놀자, 책이랑

박경리의 말 / 김연숙

칠부능선 2023. 1. 29. 19:24

<토지> 20권을 읽으며 밑줄 친 말과 박경리 선생의 말을 톺아 자신의 경험과 버무렸다.

수필의 핵심이 많다. 모든 글쓰기가 자기를 풀어놓는 일이기는 하다. 박경리 선생도 문학이 자신의 삶과 하나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래 전에 사두고 읽히지 않았는데 다시 잡으니 쉬이 읽힌다. 이렇듯 글이 시절도 탄다.

가까운 사람에게 속엣말을 푸는 듯 바짝 다가온다. <토지>의 장면들이 불쑥불쑥 다가오기도 한다.

*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죄를 파생시키는 두 가지 주된 인간적인 죄가 있는데, 다름 아닌 조바심과 태만이다. 조바심 때문에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태만함 때문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어쩌면 주된 죄는 오로지, 조바심 한 가지인지도 모른다. 조바심 때문에 인간은 낙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112쪽)

 

* " 힘찬 날갯짓, 날개 하나로 수만 리 창공을 오직 인내와 지혜로써 나는 새, 그 힘찬 날갯소리가 귓가에 울려오는 것만 같다. 산삼 타령만 하고 있는, 인생을 거의 다 살아버린 두 늙은이, 오히려 일사불란 나는 데 모든 것을 바치는 철새에 비하여 인간이 미물인 것만 같이 느껴진다." - 12권 97쪽

박경리 선생이 철새와 마주쳤다는 실제 장면도 이와 비슷합니다. "연대 원주캠퍼스에 호수가 있어요. 수위 말씀이 밤에 천둥치는 소리가 나서 나가봤더니 - 얼음이 얼 땐데 철새들이 많이 오거든요. 철새들이 도중에 묵었다가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되도록 여기서 더 묵으려고, 호수가 다 얼어버리면 먹거리를 못 찾거든요. - 그 밤에 새들이 날개로 얼음이 얼지 않게 변두리를 친다는 거에요. 그 소리가 천둥소리 같다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첫마디 한 소리가 '참 살기 힘들다'. 그다음 날 현장에 가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복판에 동그랗게 물이 얼지 않고 얼음바닥에 새들이 쫙 앉아 있어요. 그처럼 산다는 것이, 생명이 산다는 게 다 힘들어요." (144쪽)

* 일본 순사부장 자리에 오른 조선인, 한복의 형 김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손끝에 불을 켜고 하늘로 올라갔음 갔지 조선이 독립을 해? 그 희망은 죽은 나무에 꽃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허망한 게야. 왜놈 밑에서 못 살겠다 한다면 모를까 독립을 쟁취하자, 그건 잠꼬대나 매한가지"라고 말입니다. -15권 321쪽

비단 소설 속에서만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1948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친일 행적을 심문하자 "이렇게 해방이 빨리 올 줄 알았나" " 해방이 안 올 줄 알았지! 해방이 올 줄 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나"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지요. (175쪽)

* 학창 시절의 책과 시 습작 노트를 발견한 이후 그는 "그 시절의 오기가 오늘까지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19권148쪽 

백정 자손이라 멸시당하고 그 때문에 뭐든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아니 백정은 인간이 아니라고 부정당했던 그의 삶이었습니다.

...

백정 자손인 영광과 전쟁터의 병사들의 책 읽기는 결국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습니다. 책 읽기로부터 정보를 얻고 배움을 구하고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이전에 내가 인간임을 먼저 확인하는 것 말입니다.

(197쪽)

* 신영복 선생은 자신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는 자신이 매를 맞고 견디는 그것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1번 빳다'를 비롯한 모든 재소자가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맞을 매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1번 빳다'는 그야말로 '영웅적 투쟁'을 했고, 그 덕분에 다른 모든 사람이 훨씬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노인 목수나 '1번 빳다'로부터 신영복 선생은 머릿속 생각, 지기만의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254쪽)

* 이상현 아니 박경리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의 내부, 자신을 둘러싼 외부와의 대결"을 멈추지 않는 것이 '글 쓰는 나'였던 겁니다.

....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선생이 청소년 시절 마음에 품었다는 시구 "이것이 나의 투쟁이다. / 천만 줄기 뿌리를 뻗어, 저 멀리 인생 밖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 / 저 멀리, 세상 밖으로 "처럼 말입니다.

'왜 쓰는가'를 질문하고, 그로부터 '나의 투쟁'을 이어가는 것.

'글 쓰는 나'는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계속 뻗어나가고 싶습니다.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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