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부패의 힘 / 나희덕

칠부능선 2010. 1. 27. 22:02

 

  부패의 힘

  - 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을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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