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할머니와 어머니 / 문정희

칠부능선 2010. 1. 11. 01:28

 

 

할머니와 어머니

 - 나의 보수주의 

 

 문정희

 


김포공항을 떠날 때 나는 등 뒤에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왔다

남편의 사진은 옷장 속에 깊이 숨겨두었고

이제는 바다처럼 넓어져서

바람소리 숭숭 들려오는 넉넉한 나이도

기꺼이 주민등록증 속에 끼워두고 왔다

그래서 나는 큰 가방을 들었지만

날을 듯이 가벼웠었다
내가 가진 거라곤 출렁이는 자유,

소금처럼 짭잘한 외로움

이거면 시인의 식사로는 풍족하다

사랑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십수 년 전에 벌써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우리 할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감쪽같이 나를 따라와

내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앉아

사사건건 모든 일에 간섭하고 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조심조심 길조심" 성가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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