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857

잘 노는 일

딸이 2주 동안 일본에 있는 제 집에 다녀온다고 엄만 휴가를 잘 즐기라 했다. 카나다에서 2년에 한번씩 오는 시누이가 친구라서, 함께 밀린 친구만나기에 바쁘다. 7,8년 못 만난 친구들까지... 딸이 친구들과 놀라고 양양에 있는 펜션까지 예약해 주고 갔으니 다음주에는 좀 더 열심히 놀아야 한다. 요즘 내내 하는 말이다. 중간중간 공식행사, 지난주엔 호세 카레라스 공연 보고, 좋아하는 베이스 이연성의 러시아음악 공연도 가고, 그 중간에 아들과 김장훈 콘서트에 가서 소리소리 지르기도 하고. 주말엔 결혼식, 숙제는 밀리고... 병나지 않은 게 감사할 지경이다. 어제는 후배의 멋진 논문을 읽으며 칭찬을 늘어지게 하면서... 속으론 좀 많이 반성했다. 내 게으름에 대하여, 내 한계에 대하여, 아, 이런 기분이겠구..

일, 일, 일

피할 수 없는 인사치레들로 정신이 없다. 딸이 아기를 데리고 왔다. 이 천사는 낮과 밤이 바뀌어서 밤잠을 설치게 한다. 이제 한달된 신생아가 지 분수를 모르고 똘망똘망 놀자고 한다. 백일 무렵까지는 먹고자고 먹고자고 해야 살도 오르고 무럭무럭 크는 건데 말이다. 아기 보러 친구, 친척들 오가고... 한달간 충성을 다 하리라 다짐했는데 자꾸 일이 생긴다. 어제는 아들 아이의 상견례를 했다. 딸아이 때 해 봤는데도 여전히 어렵고 어색한 자리다. 아이들 칭찬으로 핑퐁게임을 너댓번 주고받고, 이런 걸 립써비스라 하는지... 따끈한 정종이 오고가니 얼굴이 붉어지고 긴장이 풀어질 즈음 헤어졌다. 손목이 시리다. 다친 손가락도 아직 삐져있다. 내 말을 듣지 않는 내 몸이 먼저 할머니가 되었음을 인식시킨다. 몸 뿐인가..

장하다, 생명

밤새 촛불 밝히고 기다렸는데 10시가 다 되어서야 소식이 왔다. 진통이 길어 무통으로 정상분만했다고 한다. 친정엄마가 곁에 있어야 하는 시간에 그야말로 이역만리에서... 애만 타는 밤을 보냈다. 예정일 2주 당겨서 세상문을 열고 나온 새 생명, 이란 미국이름을 지었다고. 한국이름은 엄마가 지으라고.. 나는 착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무조건, 무차별 사랑의 포탄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한 생명을 온전히 감싸안을 수 있는 커다란 보자기를 펼치는 일이 아닌가. 흐믓한 미소만 지어야하는... 글쎄.. 태생적 덜렁끼에 속수무책의 환상은 우짜나... 어쨌건 지금은 감사, 또 감사다. Жанна Бичевская - Как по Божией гор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