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 15

정기총회

문학위원장이 된 이혜민 시인과 아카데미 원장을 맡은 오봉옥 선생님을 응원하기 위해서 성남민예총 문학분과 회원이 되었다. 이제 두 사람은 타지로 이사를 가고 오 선생님의 후임 자리를 거절하지 못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창간부터 자부심 가지고 만들던 문예비평지 과 예산이 70% 삭감되었다. 다른 분과도 50~70% 삭감되었다. 시의 문화정책이 퇴행하고 있다. ​ ​ 문학, 음악. 세 분과 위원장이 바뀌었다. 아주 젊어졌다. 26세가 상큼한 인사를 한다. 그러고보니 이 모임에 내가 최고령인듯.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뒷풀이에서 식사하며 와인 서너 잔 마셨다. 멋진 건배사도 많았다. '우하하'만 남았다. 뒷풀이 중간에 일어서 나왔다. 최고령 퇴장이라니까 몇몇은 덕담을 해준다. ​ ​ 우수회원 시상식, ..

이 여사의 행복카페 / 이영옥

를 익일특급으로 받았다. 나도 특급 대접으로 바로 읽기 시작했다. 딱히 급할 것도 없는데 밤새 다 읽었다. 첫 작품에서 덜컥 걸렸다.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찾아보았다. 과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찾을 수 없다. 승승장구하던 39세의 남편이 비인강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투병하는 모습이 론다니니의 피에타에 겹쳐보인다. 자신보다 시어머니의 지극한 마음을 헤어리며 감정이입이 된다. 젊어서 치른 큰 사건은 부부의 결속을 다지는 거름이 된듯 하다. 작가의 반듯하고 성실한 면모가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남편이 해외근무를 하는데 함께 가지 못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두 딸을 키우며 살았다. 치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함께 모시는 시간조차도 행복한 위트로 버무렸다.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아도 그 너머의 ..

놀자, 책이랑 2024.01.27

언 강에 선 날

한참 전에 잡아둔 홍천행이다. 구리역에서 한 선생이 픽업해주었다. 지하철 타는 데 자신감이 붙었다. 어리버리 하던 내가 서울둘레길을 지하철만 이용해서 다닌 덕분이다. ​ ​ 송 샘이 집 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여러번 왔지만, 겨울에 방문은 처음이다. 춥기는 해도 쾌청한 날씨다. 정겨운 집, 딱 있을 것만 있는 간소한 살림살이도 참 좋다. ​ 송작가의 작업실을 지나 ​ 마당에 버려진 호박도 정겹다 ​ 생각하는 의자도 그래로 추위를 견디고 있고... 차담을 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기쁜 소식이다. 내 능력보다 행운이다. 전화 받는 것을 본 두 사람에게 오늘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첫 축하를 받았다. ​ ​ 송샘이 산책로를 소개했다. 언 강에 서서 작품을 구상하라고 했다. 이 얼음강 아래에서 울리는..

과타박스

시인회의 모임을 과천 한 선생댁에서 했다. 집밥 풀 서비스에 전문점 커피까지 내려주는 이곳을 쥔장이 '과타박스'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고객님~ 고객님" 하며 주문을 받는다. 오늘은 오 선생님과 7인이 모였다. ​ ​ 과타박스에 들어서니 막내인 진영씨가 봄동 겉절이를 버무리고 있다. ​ 곤드레밥이 고슬고슬~ ​ 큰 솥에 호박죽 ​ 전복 버터구이 ​ 깔끔한 건강 밥상 ​ 스님이 만들었다는 대봉시 곶감과 커피, 수제 대추차 ​ 푸지게 먹고 마시고... 시 합평은 4편, 오랜만에 내가 써간 시를 읽고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 강 시인의 시 가 좋다. 함소입지는 웃음을 머금고 땅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 오 선생님의 황진이 시에 대한 예찬이 새롭다. 연구할 수..

교양인의 서양건축사 / 이민정

교보문고 알림이 왔다. 선물을 수락하고 주소를 입력한다. '지적대화를 위한 교양인'의 서양건축사다. 해운대 류선생의 선물이다. 작가 이민정은 류선생의 '우리 민정이'다. 공자를 가르치는 선생은 아들의 짝을 그리 부른다. 건축과 예술, 문화를 삶의 기반에서 알려준다. 어릴 때 기억을 불러와 다정하게 속삭이듯 풀어낸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태어난 문명과 건축부터 로마, 중세시대를 거쳐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와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와 근대 건축과 예술에 도달한다. 짐작으로 알고 있던 것들을 사진까지 보며 소상히 알게되었다. 참한 어법이다. ​ ​ * 개인적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도 특히 이 시기, 즉 고졸기 시대의 조각상들을 좋아합니다. 앞서 언급한 쿠로스의 미묘한 차이를 찾아보면서 비교해보는 재미..

놀자, 책이랑 2024.01.25

상처로 숨 쉬는 법 / 김진영

오랜만에 김진영을 펼쳤다. 2018년 그가 떠나고, 2021년에 나온 책이다. '상처로 숨 쉬는 법'이라니, 우리가 가진 게 상처 밖에 없다면 상처를 허파로 만들어 숨을 쉬어야 한다는 거다. ​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리아》를 정리한 강의다. 부정성으로 말하는 아도르노를 김진영은 여러 철학자와 문학작품을 데려와 친절하게 풀어준다. 아도르노는 부유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와 이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신동 소리를 듣고 자라 일찍 교수가 되었다. 유태인 박해가 일어나려 할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와서도 프랑크푸르트대학 교수가 되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68학생운동 때 "강의실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실천이다"고 하며 혼자 꿋꿋이 강의 하며 이론과 실천을 동일시 했으나, 격렬(?)..

놀자, 책이랑 2024.01.20

외도의 추억 / 최민자

외도의 추억 최 민 자 시詩도 공산품이라는 사실을 제작공정을 보고서야 알았다. 문화센터 한구석 큼큼한 가내공장에서 숙련된 도제와 견습공들이 시의 부품들을 조립하고 있었다. 누군가 앙상한 시의 뼈대를 내밀었다. 곰 인형이나 조각보를 마름하듯 깁고 꿰매고 잘라 내고 덧붙이며 간간이 웃음과 농담도 섞으며 정성스레 매만지는 손길들이 골똘하고 따스했다. 시는 머릿속에서 튕겨 나오는 게 아니고 몸속 여기저기를 흘러 다니다가 손끝으로 감실감실 새어 나오거나 앞 문장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절름절름 걸어 나오는 거라고, 스티치 위에 인두질을 하고 반짝이 가루를 도포하던 장인匠人이 말했다. 얼추 완성된 시제품 위에 그가 냉큼 새 라벨을 붙인다. 털도 안 뽑힌 살덩어리에서 비계를 발라내고 근육과 뼈가 엉긴 곳에 섬세한 칼끝을..

산문 - 필사 + 2024.01.14

몸짓 / 김응숙

김응숙 작가의 '몸짓'은 어떤 춤보다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자신을 재료 삼아, 골골 진국을 뽑아냈다. 조미료 없이 낸 깊은 맛에 홀려 거듭 찾게 되는 맛이다. 마냥 담백하지 않다. 재료 자체가 특별하다. 눈물씨앗으로 진주를 빚었다. 한 줄 한 줄, 아니 한 자 한 자 땀으로 써내려간 글이다. 피라고 해야할까. 신산한 기록이 은유의 강을 넘실댄다. 곧 포용의 바다에 이를 것같다. ㄱ선생이 ㄹ작가에게 했다던 말이 떠오른다. "너의 불우가 부럽다" 작가에게 불우는 재산이다. , , , ... 낯익은 작품에도 거듭 감탄한다. 저자가 '두 손 모아' 건네 준 책을 읽으며 나도 두 손을 모으고 깊이 고개숙인다. ​ ​ ​ * 두 귀에는 저 멀리 아득한 은하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가득했다. 두 ..

놀자, 책이랑 2024.01.13

동백

분재분에서 살고 있는 동백에 꽃망울 4개가 맺혔다. 작년에는 7개가 맺혀서 한개도 활짝 입을 열지 않고 목을 꺾었다. 올해는 벌써 세 송이가 활짝 피었다. 나홀로 상서로운 기운이라며 좋아한다. 오래 전에 쓴 글도 불러온다. ​ ​ ​ ​ 동백冬柏 노정숙 ​ ​ 가을부터 앙다문 입술 흰 눈을 머리에 이고도 여문 입을 열지 않는다 새빨간 입술만 봐도 설렌다 살짝 내민 혓바닥에 황금빛 조화 서리면 바짝 달아오른다 어쩌라고 규중처자인양 옅은 미소만 머금고 새치름하다 어쩌자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통째로 목을 탁, 꺾는다 ​ ​ ​ ​ ​ ​ ​ ​ ​ ​ 이렇게 활짝 핀 건 처음이다. ​ ​ ​ 동백이 흰눈을 머리에 이어야 하는데 ... 고모님이 주신 항아리만 눈맞이 ​ 창밖에 내리는 눈과 동백을 바라보며 베트..

당신은 오월을 닮았군요 / 박은실

쉰한 번의 봄을 넘긴 작가 박은실은 "당신은 오월을 닮았군요" 언젠가 이런 말을 꼭 들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한다. 첫 수필집이 야무지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큰할머니가 등장하는 가족사도 시선을 끌어당긴다. 큰 상처 없이 소소한 일상이 작품으로 등장할 때 필요한 것들을 잘 장착했다. 공부하며 쓴 수필, 독자에게 다가가는 궁리를 하면서 쓴 수필이다. 단숨에 읽히는 장치, 위트와 유머도 있다. 오월처럼 연둣빛 해사한 작가의 얼굴이 바로 떠오른다. 믿음직스럽다. 박수보낸다. ​ ​ * 자신이 값비싼 생선인 줄 아는 도마 위 여자는 오만상을 쓰며 나처럼 저분의 거울이 되어가고 있었다. 돌덩이 대접을 받는 여인에게 강한 동류의식을 느꼈다. 나는 입꼬리가 귀까지 말려 올라가도록 고소한 웃음을 지었..

놀자, 책이랑 2024.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