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 21

아네스 바르다의 말 / 아네스 바르다, 제퍼슨 클라인

몇 해 전, 을 본 게 아네스 바르다와 첫 만남이었다. 이 책은 1962년부터 2017년까지 55년간 바르다가 행한 20편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바르다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자신을 주변인이라 여기며 늘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사진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설치 예술로 새 영토를 개척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며 자신만을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했다. 누벨바그의 대모로 칭하는 그는 말년까지 왕성한 창작욕을 보인다. 암 합병증으로 90세에 사망. * 피에시 : 의뢰받은 영화를 만들면 아무래도 풍자적 요소를 가미하게 되나요? 바르다 : 저는 풍자적인 영화를 만들지 않아요. 웃는 건 좋아하죠. (이 영화의 제목을 '에덴동산'이라고 지을까도 생각 했어요.) 하지만 풍자는 누군가를 조롱하..

놀자, 책이랑 2022.03.31

그런, 미나리 / 강정숙

그런, 미나리 강정숙 사는 게 늘 뻘밭이기만 했을까 가늘고 여린 허리로 주춧돌을 세울 때도 있었지 그런 날을 견디느라 저 작은 잎들은 부신 빛을 끌어들었지 전원주택 단지인 그 동네 언덕 아래 오래된 집 납작한 단칸방에서 낡고 얼룩덜룩한 벽지를 뜯어내고 눈꽃같이 포근한 벽지로 되배될 방을 꿈꾸며 겨울이면 따스한 불빛의 전구를 달고 여름이면 작은 선풍기를 돌려 바람을 안아 들이던, 길가로 난 작은 창엔 사철 수런수런 발걸음 소리,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고 밤이면 들창을 닫아건 뒤 불 탁 끄고 잠자리에 들 때의 그 아늑하고 달콤했을 사랑의 정처 그리하여 파릇한 새 계절 오면 몸에 물 올리고 향내 들였으나 고인 물속 거머리 떼 장딴지에 기어올라 새빨갛게 피 빨리고 속잎 누렇게 떠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던 그 아픈..

시 - 필사 2022.03.31

미풍해장국 / 오성일

미풍해장국 오성일 사무실 앞 미풍해장국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제 밤부터 불이 꺼져 있더니 오늘 낮까지 문이 잠겨 있습니다 문 닫힌 한낮의 식당 안을 들여다보는 건 왠지 섭섭하고 걱정이 드는 일입니다 해장국의 뜨뜻하고 뿌연 김이 가라앉은 식당에선 유리문 사이로 서러운 비린내 같은 게 새 나옵니다 옆 건물 콜센터의 상담원 처녀들이 늦은 밤 소주 댓 병과 함께 뱉어낸 고객님들의 안다구니와 욕지기들도 식당 바닥 찬물 위에 굳은 기름으로 떠 있습니다 의자와 정수기와 도마와 탁자와 계산대는 다들 앞길이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그늘 속에 반쯤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나는 젊은 주인 내외가 무슨 상이라도 당했으려니 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너무 슬픈 나머지 쪽지 하나 붙이고 가는 일 깜빡했으려니 짐작하면서 하루 이틀 더 기다..

시 - 필사 2022.03.29

나쁜 시절 / 류근

나쁜 시절 류근 10년씩 배경을 뛰어넘는 드라마처럼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숙취에 떠밀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한 국자 비워져 버린 간밤의 기억처럼 시간이 그렇게 큰 걸음으로 풍덩풍덩 달려가 줬으면 좋겠네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미분의 시간들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르는 길이 천축보다 멀고 밤마다 시간이 떨어뜨린 눈썹이 죽은 모래의 뼛조각으로 떠밀려 가네 한 시절 건너가는 일이 거미줄을 밟고 가듯 허공에 발자국 새기는 일처럼 아득하여서 내 절망은 적분 같은 것이네 죽는 날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 시간이 쪼아대는 부리를 견디며 살아남는 것만이 희망인 목숨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 건너가는 것만이 구원인 목숨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두어 달쯤 앞당겨 잘못 찢어낸 달력처럼 짐짓 빈 정류장을 지..

시 - 필사 2022.03.29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에릭 와이너

에릭 와이너가 기차여행을 하면서 철학자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섭렵한다. '빌브라이슨의 유머와 알랭드 보통의 통찰력'을 가진 매력적인 글솜씨라는 에릭 와이너, 그를 처음 만난 나는 시작보다 뒤로 갈수록 많은 포스트잇을 붙이게 되었다. *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마을에 정착시켰고, 철학을 사람들의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단만 있을 뿐, 그 끝은 없었다. (51쪽) * 소로가 받은 혹독한 비난은 주로 위선에 관한 것이다. 소로는 숲속에서 홀로 자족하는 척하면서 몰래 엄마 집에 들러 파이를 먹고 빨래를 ..

놀자, 책이랑 2022.03.27

새 숨

곱게 단풍 들어 데려온 초설. 푸르고 푸르게 있더니 여리여리 연둣빛 새 순을 올렸다. 생명의 기척이 기특해 자주 들여다본다. 숨탄것들 이리 치열한데, 속시끄러운 마음을 홀로 삭혀야 한다. 내 속시끄러움이 세상에 아무 힘이 되지도 못하면서 왜이리 막연한 불안함이 ... 잘 되겠지....... 낙관이 어렵지만 내 특기가 낙관 아닌가. 생명을 이어가는 어여쁜 얘들에게 배운다. 다소곳이 내 안에서 자가 거풍, 거풍~ 핑크 수국을 오래 즐기고, 꽃대를 자르고 베란다에 두었더니 이리 튼실한 잎이 올라온다. 반갑다 수국~ 죽은 듯 있던 담쟁이도 봄기척을 했다. 이 어엿한 생명이라니. 여리여리 연둣빛 싹을 올리는 초설을 베란다 밖 화분걸이에 올려 햇빛에 가까이 두니 색이 이리 변한다. 새부리 쫑곳 새우고 빛을 받아모신다.

맹렬한 하루

수욜, 수필 수업이 끝나고 4인이 양재동 맛집으로 출동. 20분 정도 기다려서 자리에 앉았다. 모밀 전문점이다. 포식을 하고 옆 옆집 카페로. 양재동 꽃시장을 돌며 흠뻑 눈호사하고 집에 데려온 애들 봄은 후리지아 향으로 온다 흰색 호접란은 언제나 옳다. 흰색 게발선인장, 안녕 ~~ 착한 가격 오처넌. 카랑코에........... 얘는 덤으로 줬다. 공짜!

무죄 / 오정순 디카시집

초대회장인 오정순 선배의 출간 소식을 듣고 바로 주문했다. 저녁에 주문했는데 새벽에 문앞에 와 있다. 알라딘 총알배송이다. 단숨에 읽었다. 순간포착에 영성 깊은 시가 어우러져 여운이 깊다. 끊임없는 열정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25년 인연, 내 시작 모습을 다 기억해주는 선배다. 내가 등단했을때 불러서 집밥을 해주고, 선물 상자를 줬는데... 그때 카드로 쓸수 있는 멋진 사진과 고운 선물 봉투들, 빼곡한 축하와 덕담들... 그야말로 보물상자를 오래오래 썼다. 감동의 순간이 문득 문득 떠올랐다. 내 책 나올 때마다 불러서 근사한 곳에서 밥을 사주고 선물도 많이 받았는데...

놀자, 책이랑 2022.03.22

2022 화랑미술제

수욜, Vip 프리뷰에 갔다. 수필반 수업 끝나고 5인이 함께 점심 먹고 차 마시고 차 두대로 갔는데 학여울역을 바라보며 40분 넘게 기다리다 주차를 했다. 다음에는 지하철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 많은 예술세계를 바라봤지만, 푹 빠질 겨를은 없었다. 어쩌면 이리 다양한지. 예술에서의 사실과 상상력을 거듭 생각했다. 오늘 수필반에서도 봄호에서 '4인 4색'을 만났다. 그냥 결국은 따뜻한 정서로. 예술의 고지는 '상상력' ?

그림 동네 202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