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 16

일요일의 일

토욜 태경네가 왔다. 찹쌀떡 속에 딸기가 들어있다. 내 취향 저격이다. 완전 맛있다. 이런 새로운 조합이 필요하다. 글에서도. 일욜 10시부터 4시까지 워크숍이 있었는데 난 오후 프로그램만 참석했다. 아이들과 아점을 먹고~~ 3시간 다녀왔다. 이곳에서는 아마 내가 최고령인 듯, 그동안 일이 많았던 김성수 국장이 회장이 되고, 새 사무국장 류정애 님의 진행으로 화기애애, 일사천리~. 나는 조용히 내가 담당할 일만 즐겁게 하는 걸로. 즐겁게 할 수 있을때까지만.

아버지의 유산 / 필립 로스

미국의 명망 있는 모든 상을 휩쓴 작가, 필립 로스가 아버지의 마지막을 기록한 글이다. 작가로서는 성공했으나 이혼하고 자녀도 없는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한다. 뇌에 큰 종앙이 있고, 오른쪽 눈 시력이 거의 없고, 안면신경마비상태다. 그럼에도 정신은 누구보다 맑고 명석하기까지 하다. 총을 들고 유대인 노인을 노려 강도짓을 하는 흑인 소년에게 한 행동이며, 의사에게 자기 병에 질문하는 것이며, 똥을 싸고 한 행동이며... 오래 남을 장면이 많다. * 그 순간 나는 아버지에게 네 단어, 그전에는 평생 아버지에게 해본 적이 없는 네 단어를 내뱉었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스웨터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세요." 그것은, 그 네 단어는 먹혔다. 나는 쉰다섯이고, 아버지는 여든..

놀자, 책이랑 2022.02.23

둔내 - 티하우스

10시에 우리집에서 4인 출발, 티하우스를 당일 다녀왔다. 다음씨가 운전하고 고기랑 술이랑 사갔는데, 혜민씨가 고구마 계란 굽고, 수육, 김치 모두 준비해 놓아서 거하게 먹고, 나는 과일과 장아찌 가져가서 곁들여 먹고~~ 왕복 3시간 30분, 4시간 정도 놀고~~ 어둡기 전에 집에 도착. 가뿐한 하루를 보내다. 횡성휴게소 화장실에서 이중섭을 만나다. 이중섭이 '소'를 그렸다고 횡성에서 대접?을 하는 거... ㅋㅋ 그런데 왜 화장실입구에? 화장실 입구에서 사진 찍는 것도 웃기고 티하우스는 여전하고~ 그리움 남기는 행복 충전소 - 티하우스 티하우스 새 식구가 늘었다. 얘들 둘이 어찌나 다정한지~~ 이것도 웃기고 젊은 둘이 설거지 하고 쥔장 옷을 덧입고 눈발이 내리는 뒷산으로 뒷 계곡에 저 추억 돋는 테이블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71년생 김지수가 88세 이어령 선생님을 매주 화요일 찾아가서 나눈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이 애잔한 질문의 아름다운 답이다. 더불어 고백건대 내가 인터뷰어로서 꿀 수 있었던 가장 달콤한 꿈이었다.' PS. 선생님은 은유가 가득한 이 유언이 당신이 죽은 후에 전달되길 바라셨지만, 귀한 지혜를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자물쇠를 푼다. (감사하게도 그가 맹렬하게 죽음을 말할수록 죽음이 그를 비껴간다고 나는 느꼈다.) ' 2005년, 현대수필 특강에 초대해서 가까이서 본 일이 떠오른다. 그 반듯한 용모와 카랑카랑한 음성이 선하다. "세월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우리 엄마 말도 떠오르고. 선생님은 암에 걸렸는데 전이된 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있다. 암, cancer는 라틴 말..

놀자, 책이랑 2022.02.19

처음 듣는 말

새로운 인연과 개인적인 만남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단 둘이 만나는 건 참 오랜만이다.) 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지만 꿈꾸는 것을 사업으로 확장시키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 그 꿈에 내가 할 역활이 있다는 거다. 사업마인드는 꽝인 나지만... 소유보다 존재에 의미를 둔다는 생각이 끌린다. 얘기 중에 지난 번 내 줌강의를 도와준 그의 남편이 떠올라서 "남편분이 아주 좋아보이세요." "네~~ 살아보면 더 좋아요." 이런 대답이라니... 서로 힘을 불어넣어주는 부부의 모습에 감탄했다. 외아들 네 살때 "느리게 살고 싶다"는 남편의 지친 모습에 당장 사표를 쓰게 하고 통장을 털어서 세 식구가 두 달 여행을 했다고 한다. 한참 쉬고 놀다가 다시 일하고 싶어질때 취업을 했단다. 아들 열 살 때는 아들과 둘이 네팔..

가르칠 수있는 용기 / 파커 J. 파머

'교사들의 교사'로 존경받는 파커 J. 파머다. 가르침에 대한 통찰과 다양한 실험으로 가르치는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 메시지를 전한다. 파머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4쪽에 이르는 이 책에 보내는 각계의 찬사로 시작한다. '아내 샤론과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맥스 J. 파머 (1912~ 1994)에게 이 책을 바친다.' 오래 전에 그의 다른 책에서 아내 샤론 파머는 그의 모든 글에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명료한가? 아름다운가?"하는 잣대를 적용했던 게 떠오른다. 그 사이 샤론 파머가 하늘나라로 거처를 바꿨다. 이렇듯 샤론이 없는 파커도 잘 살아내고 있구나... 생각하니 좀 쓸쓸하긴 하다. * 가르치는 자아의 내면 풍경의 지도를 잘 작성하려면, 지성, 감성, 영성의 3대 노선을 취해야 하며 그 중 어느 하..

놀자, 책이랑 2022.02.15

녹색 감자 / 배경희

녹색 감자 배경희 감자는 죄가 있어 햇빛을 싫어하니 망치와 TV가 브로콜리 잘라내듯 칼날은 그 식물들을 쉽게 쳐 내려간다 의심과 거짓말을 일삼는 신문들은 흰색은 그냥 싫어 이유 없는 이유야 모든 귀 막아버리고 검은 죄를 생산하고 다 털고 털어봐 우리는 감자를 믿어 기억하니 때때로 칼날 꽉 문 단단한 무를 햇빛 든 녹색 감자의 혁명이 두려울 거야 『시조미학』(2021, 겨울호)

시 - 필사 2022.02.14

말랑말랑한 그늘 / 박희정

말랑말랑한 그늘 박희정 한여름 볕살들이 드러누운 대서大暑 무렵 내 오랜 그리움이 말랑말랑 겹쳐와 서운암 낮은 길목에 사뿐 내려 앉는다 눈길 머문 야생화와 고분한 물길 사이 바람처럼 맴도는 기억, 숨바꼭질하려는지 까무룩, 그림자 길어지고 너는 멀어지고 쟁쟁한 잔돌들과 종요로운 풍경들과 오랜 향기 꼭꼭 채운 장독대 언저리마다 우련히 깃드는 그늘, 너는 술래가 된다 《시조미학》 2021년 겨울호

시 - 필사 2022.02.14

저녁의 두부 / 서숙희

저녁의 두부 서숙희 두부를 만지는 두부 같은 저녁은 적당하게 무르고 적당하게 단단하다 꾹 다문, 입이 몸이고 몸이 입인 흰 은유 으깨져 닫혀버린 축축한 기억들 경계도 격정도 고요히 순장되어 창백한 무덤으로 앉은 한 덩이 직육면체 잔뼈처럼 가지런한 알전구 불빛 아래 표정 없이 저무는 식물성 적막 속으로 수척한 자폐의 저녁이 허기처럼 고인다 -《시조21 》2021년 겨울호

시 - 필사 2022.02.14

그 이불을 덮고 / 나희덕

그 이불을 덮고 나희덕 노고단 올라가는 양지녘 바람이 불러 모은 마른 영혼들 졸참나무잎서어나무잎낙엽송잎당단풍잎 느티나무잎팽나무잎산벗나무잎너도밤나무잎 그 이불을 덮고 한겨울 어린 풀들이 한 열흘은 더 살다 간다 화엄사 뒷산 날개도 채 굳지 않은 날벌레들 벌써 눈뜨고 날아오겠다 그 속에 발 녹인 나도 여기서 한 닷새는 더 걸을 수 있겠다

시 - 필사 2022.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