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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풍해장국 / 오성일

미풍해장국 오성일 사무실 앞 미풍해장국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제 밤부터 불이 꺼져 있더니 오늘 낮까지 문이 잠겨 있습니다 문 닫힌 한낮의 식당 안을 들여다보는 건 왠지 섭섭하고 걱정이 드는 일입니다 해장국의 뜨뜻하고 뿌연 김이 가라앉은 식당에선 유리문 사이로 서러운 비린내 같은 게 새 나옵니다 옆 건물 콜센터의 상담원 처녀들이 늦은 밤 소주 댓 병과 함께 뱉어낸 고객님들의 안다구니와 욕지기들도 식당 바닥 찬물 위에 굳은 기름으로 떠 있습니다 의자와 정수기와 도마와 탁자와 계산대는 다들 앞길이 막막하다는 표정으로 그늘 속에 반쯤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나는 젊은 주인 내외가 무슨 상이라도 당했으려니 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너무 슬픈 나머지 쪽지 하나 붙이고 가는 일 깜빡했으려니 짐작하면서 하루 이틀 더 기다..

시 - 필사 2022.03.29

나쁜 시절 / 류근

나쁜 시절 류근 10년씩 배경을 뛰어넘는 드라마처럼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으면 좋겠네 숙취에 떠밀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한 국자 비워져 버린 간밤의 기억처럼 시간이 그렇게 큰 걸음으로 풍덩풍덩 달려가 줬으면 좋겠네 내게로 쏟아져 내리는 미분의 시간들 아침에서 저녁으로 이르는 길이 천축보다 멀고 밤마다 시간이 떨어뜨린 눈썹이 죽은 모래의 뼛조각으로 떠밀려 가네 한 시절 건너가는 일이 거미줄을 밟고 가듯 허공에 발자국 새기는 일처럼 아득하여서 내 절망은 적분 같은 것이네 죽는 날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 시간이 쪼아대는 부리를 견디며 살아남는 것만이 희망인 목숨을 건너가야 한다는 것 건너가는 것만이 구원인 목숨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두어 달쯤 앞당겨 잘못 찢어낸 달력처럼 짐짓 빈 정류장을 지..

시 - 필사 2022.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