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반란
내 몸이 반란을 시작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인사를 하는 경비원에게 고개를 숙이는데 등이 당기고 아프다. 이 황당한 인사법이 마땅치 않지만 어찌 해볼 방법이 없어 민망한 몸짓으로 넘기고 있다. 팔이 올라가지 않고 어깨도 아프다. 할 일을 두고 못 보는 성격 탓에 어깨가 혹사 당했나보다.
고장이 날만도 하지, 얼마나 오랫동안 잘 썼나. 그간 잘 버티어 준 것이 고맙지.
모임에서 나도 모르게 어깨로 손이 가고 얼굴을 찡그렸는가보다. 선배는 내 얼굴에 웃음기가 없어졌다며 나를 데리고 한의원에 갔다. 의사는 맥을 짚더니 상체에 기와 혈이 몰렸단다. 균형을 잃은 몸은 약한 부분에서 이상이 나타나는 것이란다. 그러고 보니 지난 겨울에는 발이 시려서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가슴에 혈이 몰려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가슴 속에 가득한 것을 머리로 풀려고만 생각하는 이 미련함을, 행동이 따르지 않는, 발이 닿지 못하는 사유는 공허한 것인데 늘 생각만으로 분주한 나의 한계가 보인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며 내게는 먼 일처럼 여긴 것이 우습게 되었다.
오슬로 교외의 프로그너 공원에 세계 최대의 조각공원이 있다.
옷 벗은 인간의 온갖 모습이 그 곳에 있다. 살아 움직일 듯 한 생동감과 처절한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하다.
북구의 로댕이라고 하는 자연주의의 작가, 구스타프 바겔란드. 어떤 선택의 권한도 없이 전생에도 자신은 조각가였을 거라는, 강한 힘에 이끌렸다는 숙명적인 작가다.
그 많은 작품들이 고집스럽게 생긴 한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다. 저항과 호전적인 눈이 빛난다. 고집이나 치열함 없이 무엇을 이루겠는가.
사람의 일생 ―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나타낸 수백의 청동과 화강암의 조각들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생기를 더하고 있다. 인간의 본능과 감정을 이처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한계상황에서의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들로 심리적 통찰이 느껴진다.
태아의 웅크린 모습에서부터 장난치는 아이들, 몇 년 전에 도난을 당해서 유명해진 ‘화가 잔뜩 난 아이’ 의 질끈 감은 눈은 익살스럽고 굳게 쥔 주먹은 힘이 있다. 아이를 어르는 행복한 어른의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 서로 대화하고 춤추는 남녀, 사랑을 나누고 싸우기도 하는 일상의 우리들 모습이 그곳에 있다.
거대한 ‘가족’ 청동상은 21개의 인물상으로 서로 보호하려는 인간의 원시적 본능을 나타내고 있다. 가족을 감싼 팔에 불거져 나온 힘줄은 노인과 어린이를 보호하는 가장의 힘이 나타난다. ‘모노리스’ 라고 하는 121명의 사람탑이 있다. 가까이 보는 이 인간군상은 섬뜩하다. 인간이 인간 위에 포개져 얽히고 설킨 탑의 맨 아래는 힘없는 이미 생명을 잃은 듯한 시체들이 깔려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선과 악의 갈등, 부활과 다산의 의미, 분분한 해석이 17m 높이의 인간기둥을 따라 올라간다.
강한 인상으로 남는 것은 앙상한 두 노인의 모습이다. 굽은 등에 서로 의지해서 겨우 걸을 것 같은 휘어진 다리, 지친 듯 처진 배의 주름, 초라한 몰골의 두 노인의 퀭한 눈, 어설프게 쥔 손이 공허하다. 무덤에서 나온 듯한 죽음이 가까이 온 인간의 모습이다. 너무 적나라해서 바로 쳐다볼 수 없는, 피하고 싶은 모습이지만 그것이 가장 정직한 인간의 모습이다.
장년에는 고뇌가 있고 노년에 이르러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나무 위에 놓인 뼈로 묘사하고 있다. ‘삶의 순환’이 전해진다.
프로이드와 융과 같은 시대를 산 바겔란드도 인간의 모든 심리적 현상은 평범한 일상을 통해 존재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의 작품들에 제목을 달지 않음으로서 관람자에게 해석을 맡긴다.
‘나의 모든 작품의 의미에 관한 한 나는 괴테가 그의 작품 파우스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에커만의 질문에 그 작품이 단지 한 가지 생각의 실타래에 걸려 있지 않다고 대답한 것과 같은 생각이다. 미리 작품을 설명하는 것도 똑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나는 나의 작품을 설명할 수 없다. 단지 나의 작품은 보편적이면서, 주관적인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
오슬로시와 독지가들의 지원을 받아서 개인 박물관과 거대한 조각공원을 40여 년에 걸쳐 만들었지만, 그는 완성되기 전인 1943년에 사망했다. 사후에 그가 기획한대로 오슬로 시에서 완성했다. 20세기초 작은 지방 도시였던 오슬로시는 한 위대한 작가에게 지속적인 지원을 하면서 작가가 가진 창조적 근원을 모두 이끌어냈다.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이 시간에 왜 그 프로그너공원의 두 노인의 초상이 생각나는 걸까. 너무 일찍 겁먹고 있는 것인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닮아 가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알기는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내 몸의 반란에 대해 의연할 수가 없다. 더 깊어질 통증보다 마음이 먼저 약해지는 것이 두렵다. 어쩌면 반란이 아닌, 세월에 대한 순응인지도 모른다. 거역할 수 없는 삶의 순환, 그 가운데 있다.
바겔란트 조각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