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에서

앙코르왓의 미소

칠부능선 2006. 6. 15. 00:11
 

                    앙코르왓의 미소




  캄보디아의 국경도시 아란야쁘라텟.

  흰색 ㄷ자 형 건물, 카지노 호텔 아래로 늘어선 긴 행렬이 국경을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아시아버스 35인승, 제 몸도 힘겨워 보이는데 스무 명의 일행을 태우고 많이도 헐떡였다. 한 달 전까지도 13시간이 걸렸다는 이 육로는 그 동안 많이 다져졌다. 손대지 않은 황톳길,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한참동안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부실한 다리를 만나면 옆길로 돌아 벌판에 새로운 길을 만들며 달린다. 비포장을 6시간 이상 달리는 동안  흔들리는 차의 요동에 몸을 맡긴다. 처음엔 긴장해 온 몸이 무거웠지만 어느 정도 지나니 스스로 적응한다. 참 기특한 일이다.

 

  '큰 얼굴은 지는 햇빛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는데,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1850년 6월, 프랑스인 가톨릭 신부 뷰오와 원주민 신자 네 사람이 캄보디아 톨레샾 호수 북쪽 밀림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자, 눈 아래 펼쳐진 엄청난 광경과 만난다. 그것은 아주 큰 돌탑에 새겨진 부처 얼굴이었다. 부처 얼굴을 새긴 탑이 수없이 늘어서 있고, 거대한 왕궁과 나무에 뒤덮인 도시가 신기루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원, 앙코르왓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원을 둘러싼 강처럼 큰 못을 건너는 다리 위를 맨발로 걷는다. 아침나절이지만 태양의 열기가 발바닥을 자극한다. 견딜만하다. 오체투지도 못하면서 이쯤은 참아야 하지 않겠는가 호기를 부려본다. 사원을 향해 걷는 길 위에서 뜬눈으로 꿈을 꾼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왕의 눈밖에 난 무희가 아니었을까. 다리 난간에 험하게 조각된 얼굴들이 낯익다. 왕궁에서 쫓겨나 멀리 왕의 사원을 바라보며 원한과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맨발로 뜨거운 돌 위에서 지칠 때까지 춤추는 무희, 걸을수록 발바닥에 전해오는 통증이 익숙해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앙코르왓은 힌두교와 불교가 어우러진 예술품들이 이곳 특유의 양식으로  인도의 고대 서사시와, 장엄한 힌두설화가 1층의 회랑을 따라 길게 새겨져 있다. 부조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생활상은 낙천적이다. 전투장면 속 병사들의 모습도 익살스럽다.

  긴 사원의 회랑과 회랑이 이어지는 곳마다 아름다운 힌두의 무녀, 압살라가 부끄러움도 없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풍만한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 관능을 느끼기에는 머리에 쓴 탑처럼 생긴 관이 부담스럽다. 그녀의 가슴을 만지면 남자는 아름다운 배필을 만나고 여자는 가슴이 아름다워진다고 한다. 문 옆에 서있는 압살라의 봉긋 솟은 가슴은 무수한 이들의 손길에 어루만져져서 검은 윤기가 흐르고 있다. 많은 이들의 소망, 원시부터 이어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소망은 이루어졌을까.

   그 시절 사람들은 높은 산은 하늘과 가깝다고 믿었고, 신은 산의 정상에 있다고 생각했다. 메루산으로 형상화되는 중앙 성소의 높은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파르다. 높이, 더 높이 올려야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은, 그 높은 곳에 거대한 암석을 올려서 어찌 조각을 했는지. 신을 숭배하던 인간은 그 안에 어쩌면 신성이 공존했는지도 모른다. 수직에 가까운 계단을 네 발로 올라와서 드리는 기원은 무엇일까.

  앙코르 톰, 다섯 개의 탑이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는 건축공법, 균열조차도 같은 방향으로 일사불란하다. 널려있는 돌무더기들은 아직도 제 자리를 못 찾고 서성댄다. 제대로 자리 찾지 못해 도드라진 채로, 새로 만든 라테라이트의 설익은 색깔은 그대로 시간의 흐름까지 보여준다. 

  보석으로 치장한 타프롬 사원은 빠져버린 보석자국으로 드나드는 바람이 시리다. 앙코르를 더욱 심하게 파손시키는 것은 도난이다.

  통곡의 사원 어두운 방에 들어가 가슴을 쾅쾅 친다. 수직으로 쌓아올린  허공에 빛살 좋은 하늘이 보인다. 쌓였던 말들이 웅웅거리며 사원의 종소리처럼 다시 돌아와 내 가슴에 박힌다.

 

  앙코르의 유적군은 310평방km의 넓은 평원에 700여개의 가장 많은 건축물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유적지다. 앙코르왓은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원이다. 7세기에서 13세기에 전성기를 이룬 앙코르시대의 산물이다.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 종교와 예술, 당시 크메르인의 삶이 숨쉬고 있다. 눈부신 도시와 사원을 건설한 크메르족은 어떤 사람들일까. 왜 한 줄의 기록도 없이 100만이 넘는 사람이 흔적조차 없는가.

   

  아, 이곳이 킬링필드의 나라가 아닌가. 해골산을 보는 것으로 한 인간의 어리석음, 그로 인한 역사적 퇴행에 대한 참혹한 기억을 떠올린다. 무모한 피의 대물림인가.

  주변의 강대국에 끼어 질곡의 역사를 걸어온 모습이 우리의 역사와 비슷하다. 우리가 고구려의 영광을 그리워하듯이 캄보디아는 앙코르 시대의 영광을 이야기한다. 문화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 머릿속에 숫자를 늘인다.

  엄청난 규모의 앙코르 유적을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다. 불가사의로 미루는 것으로 분석은 끝낼 일이다.

  뜨거운 햇살아래, 입 꼬리가 확연하게 올라간 앙코르왓의 미소, 사방에서 볼 수 있는 그 미소가 더 많은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느낄 것, 오로지 느낌으로 다가가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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