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에서

그곳, 타슈켄트

칠부능선 2006. 5. 10. 21:49

 

  그곳, 타슈켄트

 

 

                                                                                   

  첫 번째 우즈벡 남자는 기내 화장실 앞에서 만났다.

  산업연수생으로 와서 2년간 부산의 오뎅공장에서 일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나 한국사람 좋아해요, 반갑습니다”를 연발하는 그 검은 눈동자의 남자는 순박해 보였다.

  우즈베키스탄 공항, 굳어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오랜 동안 영향을 받은 러시아풍이다. 4시간 뒤로 가는 시차로 널널해진 밤 시간, 피로를 풀고 하루를 시작하는 일정이 마음에 든다.


  다음날 오전 10시부터 한국문인협회에서 주최한 해외문학심포지엄이 시작되었다.

  ‘전쟁과 한민족 문학’이라는 주제다.

  해외동포가 6백만 명으로 세계 5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는 전쟁에서 가장 많이 피흘린 민족이라는 것을 먼 곳에서 확인한다. 그것도 우리민족이 스스로 한 전쟁이 아닌 남의 사주에 의해서 말이다. 널리 알려진 유태인이 육백만 명 희생된 데 반해 우리민족은 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힘없는 조국을 둔 우리 동포, 한민족의 수난사다.

  순박한 촌로의 모습을 한 초로의 교포 작가 박 보리스씨, 이 베차슬라브씨, 통역이 필요한 의소소통에서 민족의 비극이 전해진다. 조국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그들은 러시아어와 현지어를 쓰고 있다. 러시아어나 현지어로 작품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어려움을 듣는다.

  고려인들은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한글로 된 책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에서조차 한국어책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조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책 대신 일본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거리상 가까우니까 조국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일본책은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시중에 나와 있다는 것이다.

  돌아와서는 금세 잊어버리고 만 일이었지만 그 당시 마음은 당장이라도 쌓여있는 책들을 보낼 생각이었다. 나 아닌 누군가가 서둘러 주기를 바라는 내 모습 또한 문화의 후진성에 일조한다.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전쟁에 징집당해 연해주로 끌려간 선조들은 전쟁이 끝나도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다시 러시아로 내 몰리고, 그곳에서 겨우 삶의 기반을 마련할 즈음 하루아침에 빈 몸으로 차에 실려 황량한 위성국의 들판에 떨어뜨려져 살아왔다고 한다. 굴욕의 역사를 몸으로 산 그들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에 와서도 조국에 마음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현실을 어찌 받아들일까. 조국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 해외의 동포들에게 어떤 힘이 되고 있는가. 감당할 수 없이 큰 빚을 진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주제의 엄숙함에 고개 숙이고 문학의 다양화를 다시 새기며, 말의 절제를 계속 느끼는 시간이 흐르고, 심포지엄은 끝났다.

  조국 전쟁에 희생당한 우리 겨레 한민족의 한 많은 생애, 그들의 상처를 무엇으로 위로할까. 문학이 구원이 될 수 있는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가.

  ‘문학이 활동을 멈추면 민족의 사망과 다름없다’는 러시아작가 살트코브 셔드린의 말이 가당한가.


  낙타를 타고 물건을 싣고 가던 실크로드를 냉방이 잘된 현대버스를 타고 달린다.

  우즈벡 문학의 아버지 나보이 문학박물관은 중앙아시아문학에 대한 인물들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즈벡 민족의 정체성은 세계정복을 꿈꾸던 16세기의 아무르 티무르 대왕과 시인 알리세르 나보이에게서 찾고 있다. 반정부시인들의 활약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지만 문학에서부터 의식이 깨어나고 있었다. 반정부시인, 무끼미의 초상화가 유독 눈길을 끈다. 빛나는 깊은 눈이 투쟁적이라기보다는 몹시 아름다웠다.

 실제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회교도들은 비유와 풍자를 통해 세상과 교류했다. 문학이 저항과 개혁의 도구였던 시대를 부럽게 바라본다.

  한국문학의 선구자로 소개되고 있는 조명희 기념관은 나보이 박물관의 막다른 작은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포석 조명희의 모습이 마주하고, 빛바랜 흑백사진들이 그 시절을 그리며 끊어지지 않는 문학의 맥을 확인한다. 그의 작품 '낙동강'에서 말하듯 ‘당신은 최하층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탄 같아야 합니다 ’라며 가정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같은 여성에 대하여, 남성에 대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아직도 카프문학가로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듯 현실에서 먼, 약간의 우수와 열정이 섞인 미남형 얼굴이 왠지 황량해 보인다.

 

  말만 먼저 내달리는 개혁에 식상한 오늘, 뜨거웠던 여름 그곳 타슈켄트를 다시 그려본다.

  티무르 광장에서 반갑게 한국인을 맞는 우즈벡 사람들의 밝은 얼굴과 대비되는 고려인들의 표정이 가슴을 무겁게 누른다.

 

 

* 사진두 더럽게 못 찍는다고 흉들 많이 보세요.^^

'낯선 길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리수 나무  (0) 2006.07.03
앙코르왓의 미소  (0) 2006.06.15
슬픈 러시아  (0) 2006.06.08
내 몸의 반란  (0) 2006.06.07
'바그다드 카페'에서 인도로  (0) 200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