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에서

보리수 나무

칠부능선 2006. 7. 3. 23:52

 

                                      보리수 나무

                                                                

   

                                                                                                                         

  마우이 섬에 있는 보리수 나무.

  한 그루가 800평의 그늘을 만들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뻗어 내린 듬직한 줄기는 수양버들 모양으로 능청거리다가 바람에 흔들리며 땅을 향해

  뿌리를 내리고 옆으로옆으로 영토를 넓힌다.  

  이곳의 보리수나무는 왜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자랄까.

  제 둥치를 더 크게 살찌우지 않고 옆으로만 팔 벌리는 걸까.

  그 넓은 품에 곤한 등을 기대어 보니 보리수가 석가를 생각하게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무 아래 넓은 그늘은 작은 공원 같다.

  오색 구슬을 꿰어 장신구를 만드는 사람이 느린 손을 움직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오밀조밀 손때묻은 잡다한 물건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간이장터가 된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물건들이 정겨워 한참을 들여다본다.

  보리수에 기댄 커다란 나무의자에는 지쳐 보이는 사람들이 길게 앉아있다.

  명암이 다른 피부를 가졌지만 나른한 표정들이 같다.

  위로만 향하는 머리를 식혀 주며 가슴을 열고 두 팔을 벌리라고 속삭인다.

  그의 음성에 순한 아이처럼 눈을 감는다.

  온몸의 모든 감각이 귀로 모아지는 것을 느낀다.

  모든 감각이 귀를 향해 힘을 보태준다.

  길 잃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옅은 향기에 취해 잠시 나무와 하나가 된다.

  갈 길 바쁜 구름은 서둘러 자리를 뜨고 졸린 햇살이 잎새에 앉는다.

  머물지 않으면서 보리수를 키우는 바람, 느긋하고 포근한 햇살에 반짝이는 잎새,

  한때 폭풍으로 더욱 강해지는 줄기, 둥치 밑의 검고 부드러운 흙은 개미와 땅강아지에게 넉넉한 자리를 내주고 있다.

  더 이상의 번식을 포기한 연륜이 깊은 나무 등걸에는 네네라고 불리는 거위 닮은 새의 분주한 생이 있다.

  삶의 갈증을 달래줄 성소 하나 가슴에 품고 사는 여유를 이곳에 심는다.

  거대한 보리수나무는 말없이 온몸으로 ‘보시’를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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