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블친 4인이 수내역에서 만났다.
여전하신 모습들에 안도하며 감사했다. 특히 눈이 점점 어두어지는 해선녀님, 플릇을 배우신다는 데 놀랍다. 더 젊어진 할아버지 와이즈님, 변함없이 멋진 미루님, 간단히 점심을 먹고, 지하 그린 카페에서 이야기, 일박을 해야하는 모임인데 이번에는 환할때 헤어졌다.
미루님이 건네준 책이다. 단숨에 읽었다.
60년생 김미경, <또 하나의 문화> 무크지는 오래 전, 나도 정기구독 신청을 했던 잡지다. 여성신문, 페미니스트들의 활약이 시작되던 때다. 부父의 성이 아닌, 부모父母의 성을 함께 쓰는 여성들이 등장했었다. 그때 그 시절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여기서도 용기있는 엄마 '장차현실' 에게 박수보낸다.
1992년 '석사 아내와 고졸 남편'의 결혼이 화제가 되었단다. 그 남편은 뉴욕에서 화가가 되고, 그 후 남편과 헤어져 홀로 사회인으로, 열심한 엄마로 종횡무진한 발걸음이다. 쉰 살 여자와 열여섯 살, 자유무쌍한 딸의 모습이 상쾌, 통쾌하다.
2010년 2월에 쓴, 작가의 촘촘한 시간이 단숨에 지나갔다. 그 이후 행보가 궁금하다.
* 누구나 사치할 권리가 있다. 깊은 산 속 가진 거라곤 허름한 움막밖에 없는 도 닦는 스님이 아름다운 자연과 황홀한 영혼의 사치를 누리듯, 가난한 화가가 오묘한 색감과 감성의 사치를 만끽하듯, 평생 보석 반지 하나 사 낄 수 없었던 우리 엄마가 고운 이부자리의 사치를 아버지 몰래 누렸듯, 누구나 사치할 권리가 있다. 문득, 사치에는 '영혼 지키기'라는 다른 이름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75쪽)
* 그 당시 나의 애인 버리기, 미모 버리기 정도는 내로라하는 버리기 대열의 중간 축에도 끼지 못했다. 더 엄청난 것들을 버리는 친구들이 수두룩했으므로. 학교 옥상에서 삐라를 뿌리고 감옥에 들어가길 자원하는 형태로 신체의 자유를 버린 친구들, 기득권의 온상인 가족과의 인연을 모질게 끊어버리는 형태로 가족을 버린 친구들, 그리고 공장에 들어가 손가락이 잘려 신체의 일부를 버린 친구들, 그리고 또 수많은 것들을 버린 친구들... 그리고 그 후에 나는 여성운동을 하면서 남편의 돈으로 살 수도 있는 기회를 버렸고, 돈 잘 벌어올 가능성이 있는 남편을 찾을 기회도 자발적으로 선선히 버렸다. (127쪽)
* 내가 안다는 것이 이렇게 제한적인데 내가 들을 수 있는 것은 또 얼마나 제한적일까? 내가 알지 못해 못 듣는 것들이 그 얼마나 많을까. 내가 듣지 못해 알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만큼일까? 그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뉴욕 지하철 광고판에 붙어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한 말이란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단지 해변에서 놀고 있는 소년과 같다. 때로 고운 돌멩이나 더 예쁜 조개껍질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소년처럼 말이다. 전혀 그 속내가 밝혀지지 않은 거대한 진실의 바다가 내 앞에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도 말이다.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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