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선, 성별이 구별되지 않는 이런 이름이 나는 좋다.
김주선, 여러 연상이 가능해서 더 좋다.
첫 책을 직접 만들어 <도서출판 The선> 대표가 되었다.
새벽마다 '명당경'을 외우는 쉰이 넘은 아버지와 46세 어머니가 큰며느리의 출산에 안방을 내주고 헛간에서 낳은 <뒷간둥이>다. - 엄마, 아버지 마흔에 낳은 늦둥이 나는 깨갱이다.
삶이 어떻게 무늬가 되는가. 작가는 상처와 결핍을 햇볕에 궁글리며 다양한 문양을 만든다.
작가에게 상처와 결핍은 더 이상 아픔이 아니라 재산이다. 결고운 무늬로 자신은물론 독자에게도 위안이 된다.
열심한 삶과 작가의식도 투철하다. 처음 쓴 자신의 글을 100번쯤 읽으며 퇴고를 한다는, 그 말을 민망해 하는 모습도 미덥다. 에필로그에 '독자 감상평과 월평'을 챙겨둔 것이며, 스스로 상복이 많다는 이력에도 열정이 가득하다. 내가 배울 점이 많다.
박수 보낸다.
* 젊은 날, 상처 부위를 호호 불어가며 다친 마음을 치유해 주었던 것은 잡기였다. 신변의 이야기를 쓰면서 상처가 아무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비록 두 권은 소실되거나 분실되었지만, 마지막 노트 한 권은 남았다. 이 노트가 내 수필 인생에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겠다. 집안의 대들보라고 여겨진 장조카의 그늘에 묻혀 당연하게 포기했던 어린 날을 꿈과 마주할 때면 나는 매번 울었다. 우는 나를 달래고 다독이던 수많은 위로의 인사가 시가 되고 산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85쪽)
* 우스갯소리지만 나의 영정 사진은 뒷모습이 담긴 초상화로 할 것이라고 유언 아닌 부탁의 말을 남길 정도였다. 꼭 앞모습이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상식을 깨자.
뒷모습 초상화는 문학으로 치면 열린 결말일지도 모른다. 초상화에서 어떤 감정과 표정을 읽을지는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66쪽)
* 카미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에서 코끼리가 뒤뚱거리며 왈츠 추는 춤사위를 더블베이스만큼 표현한 악기를 본 적이 없다. 키스하듯이 목을 끌어안고 허리를 구부린 채 열심히 활을 문지르는 연주자를 볼 때, 나도 모르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품위있는 현絃의 족속族屬이라고 해서 모두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된다면 누가 육중한 코끼리를 춤추게 할 것인가.
나의 자리가 맨 뒷자리고 다른 사람의 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가 안 들릴지라도 인간관계에 깊은 울림을 주는 사람, 가만 앉아만 있어도 분위기를 압도하는 그런 정서를 나는 좋아한다. (186쪽)
* 친정엄마랑 오는 딸은 있어도 시어머니랑 오는 며느리는 처음이라고 가이드가 나를 한껏 추켜세웠다. 여행 내내 어머니는 피로감을 호소했다. 장시간 금연으로 인한 금단증세 때문이었다. 낭만의 거리 달링하버에서 어머니가 사라져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찾았다. 어느 건물 앞 백인들 틈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신 어머니를 발견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동양인 할머니의 아우라가 전혜린을 넘어, 달링하버의 보행자 거리에서 당당하게 퍼포먼스를 하는 게 아닌가. (221쪽)
* 나에게 가름끈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의 경계인 바로 '오늘'일지도 모른다. ....
인생노트의 마지막 페이지가 해피엔딩일지 비극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가름끈이 끼워져 있는 그 너머의 시간을 기다림은 큰 축복이다. 인생 머리밭에 달린 가름끈을 빼고, 오늘이라는 문장을 더듬던 눈에서 어느새 초저녁 별이 뜬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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