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선생의 9년만에 낸 두 번째 수필집이다. 오래 못 만난 선생을 만난 듯 반갑다.
선생과 오래전 추억이 떠오른다. 인사동에서 박 선생과 가끔 만나고 집에 초대받아 거하게 먹고 맛난 음식을 싸준 기억도 있다. 넉넉하고 다감한 품성이다. 글에 대한 열정도 꾸준하시다. 만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믿음직스럽다.
종부로서 대를 잇지 못한 죄가 백 년의 침묵으로 잦아든다는 마음과 딸이 주는 선물이나 용돈을 서서받는 기분이라는 마음에서 시대차를 느낀다. 요즘은 딸이 가정을 이끄는 주역이며, 결혼은 선택이고, 출산도 의무가 아닌 세상이다. 변하는 세태에 휘둘리지 않는 꼿꼿한 모습이 그려진다. 완고하기보다 유머를 장착하는 여유도 있다. <뚱땡이 미스 킴>은 끝내 <김 여사의 부자 놀이> 까지 갔다. 성공이다.
잘 살아오신 시간과, 잘 살고 계신 나날에 경의를 보낸다.
* 수필은 나의 민낯이다. 가족이나 이웃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삶이고 경험이었다. 결국 글쓰기는 내놓을 것 없는 나를 사랑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 중에
* 토마스 만은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9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정각 12시에 끝을 낸다. ...
누구를 따라 하겠다는 것도 내 나름으로는 열심히 글을 써보자는 결심이었다. 아침이면 식구들의 식사, 빨래, 청소까지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침 9시에는 무조건 컴퓨터를 켜놓는다. 원고 청탁을 받아 글을 쓰게 되는 날에는 9시에 시작해서 12시까지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밖에 모든 일과 약속은 오후 시간에 잡혀 있고 핸드폰도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자유롭다.
(27쪽)
* 흰색이 사람에게 입혀졌을 때 상징되는 빛는 너무도 강렬하다. 결혼식에서 신부의 하얀 웨딩드레스는 순결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발산하다. 장례미사를 드리는 신부의 하얀 제의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최후의 퇴장이다. 내가 퇴장하는 날 하얀 원피스를 입고 누워 있으면 모자랐던 인생이 깨끗하게 덮어져 예뻐 보일까. 자식들 복잡하게 장례의식까지 챙겨 가며 떠나기보다, 하얀 원피스 하나 입고 가볍게 날아가고 싶다. (132쪽)
* 어느 날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이시영의 시집을 사서 들려 주었다. 이처럼 글 잘 쓰라고 거름을 들이부어 주어도, 나는 만날 그 나물만 무치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합평 시간에 박 선생이 아침에 유모차를 타고 가는 아기를 보고 쓴 글이라고 짧은 글 한 편을 내놓았다. 첫 문장이 '유모차 밖으로 아기가 손을 내밀어 햇볕을 만지작거린다.'였다. 참나무처럼 꼿꼿한 양반이 연하고 보드랍다. 그도 어쩔 수 없는 할아버지였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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