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범도 1,2 / 방현석

칠부능선 2024. 11. 9. 22:48

지난 토욜 <성남문학축전>에서 만난 방현석 작가의 소설을 바로 주문했다.

13년 동안 취재하여 만들었다. 629, 670쪽. 두께에 미리  눌릴 필요는 없다. 박진감 있게 잘 읽힌다.

사냥이나 전투에 대해서 까막눈인데도 바로 이해가 된다. 친절하다.

항일무장독립투쟁의 40년 역사,

안중근, 이강, 안창호, 서재필, 전봉준, 김좌진 ... 알려진 이름들과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을 벅차게 만났다.

목숨과 의로움을 바꿔야 할 때, 의로움을 선택한 사람들이 우리나라 독립의 거름이 되었다. 

내 희생없이 자유와 민주를 외칠 수 있는 건 저 의로운 이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이다.

신포수, 백무현, 김수협, 유인석, 최재형, 리범진, 차이경, 최진동, 박서양 ... 곧고 높은 그들의 영혼을 그려본다.

여연, 백무아, 금희네, 진포, 김알렉산드라, 보급대장 김성녀... 인간으로 오로지 용맹한 여 전사, 지혜롭고 아름다운 이들에게 경의를 올린다.

책을 덮으며 '주인공의 자리를 양보할 줄 아는 주인공, 자연의 질서와 포수의 질서로 산' 순정한 인간,

홍범도. 그 처절한 삶에 기어이 ... .

<범도>1

* "그 몫이 대체 얼마예요?"

"먹고 살 만큼. 여우도, 늑대도, 범도 그 이상을 사냥하지는 않아. 나도 여우나 늑대, 범처럼 내 몫만큼 사냥을 하며 이 산에서 짐승의 하나로 살아가는 거야. 그게 짐승의 질서고, 산돌이도 그 질서 안에서 죽은 거야. " ( 52쪽)

- 어린 범도에게 포수의 법칙을 알려주는 신포수

* 백무현도 칼을 쓰지 않았다. 뒤집어 잡은 칼로 상대의 뒷목을 쳐서 졸도시키며 백무현은 한 걸음 한 걸은 치고 나갔다. 날로 베는 것보다 등으로 치는 것이 까다로웠다. 죽이는 것보다 졸도시키는 것이 훨씬 어렵고 위험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동안 속으로 백무현을 무시하고 미워한 것도 미안햇다. ....

죽이지 않고도 농민들을 진압할 수 있다는 것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파총이었다. 조금만 선무공작을 펼쳐도 낫을 내려놓을 농군들이었다. 덤빈다 해도 죽이지 않고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 (109쪽)

* 전투는 기세와 용력에 달렸고, 세상의 포수는 두 종류가 있을 뿐이다. 범을 잡아본 포수와 잡아보지 못한 포수. 범을 잡아본 포수라야 두려움을 이겨내는 법이다. 나는 화승이 타들어가는 속도에 맞춰 손바닥을 천천히 오르내리며 김수협에게 신호를 주었다. 하나, 둘, 셋. 김수협이 방아쇠를 당겼다. (309쪽)

- 선비 출신 김수협이 범포수가 되었다.

* 유인석은 화서학파, 노론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오백 년간 조선을 이끌어 온 유림의 적통을 이어받은 양반 사회의 수장이었다. 왜구와 오랑캐의 침입을 수없이 당하고 임금이 피신까지 갔어도, 언제나 잠시였다. 결국, 다시 나라를 지배하는 건 글 읽고 글을 짓는 유림의 선비들이었다. 그것이 오백 년 조선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었다. ....

유인석의 부대는 연기를 감추려고 생쌀을 씹어먹어가며 야음을 틈타 남하해온 우리와는 근본부터 달랐다. 즐비하게 솥이 내걸리고, 고깃국을 끓이고 이밥을 짓는 연기가 보개산 자락에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저격여단의 대원들이 이토록 흥성하게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357쪽)

* " 제가 비록 하잘것없는 계집이나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혹여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저희 객상에 들르십시오, 상덕원 객상이 저와 남편이 운영하는 객상이고, 저는 언제나 거기에 있습니다. 제 이름은 여연입니다. "

대담한 눈빛으로 나를 한참 바라보던 여자가 천천히 돌아서서 울라온 산길을 거슬러 내려갔다. (452쪽)

- 일본어가 능통한 여자를 탐관 전기준에게서 구해줬다.

* 얀코프스키는 고통스럽게 비틀거리다 주저앉는 적록을 보며 입꼬리가 귀에 가 걸리도록 웃었다. 그는 포수가 아닌 사냥꾼일 뿐이었다.

신포수는 총잡이를 세 가지로 나누었다.

'복부를 맞춰 낙명시키지도 못하는 총잡이는 백정이고, 심장을 맞춰 고통스럽게 낙명시키는 총잡이는 사냥꾼일 뿐이댜. 두부의 급소를 맞춰 일격에 낙명시켜야 포수라고 할 수 있지.' (500쪽)

* "우리는 낫과 죽창을 들고 일어났던 농민군과 다르오. 하인을 데리고 다니며 행세하던 양반들의 의병과도 전혀 다르오. 가진 총알의 숫자만큼 적을 잡는 것이 바로 우리 포수들이오." (575쪽)

* 격문의 반응은 격했다. .....

화승총으로 적의 38식 기관총을 잡은 노포수들의 장렬한 최후를 전해듣고도 구들장에서 등을 떼지 않는 포수는 포수가 아니었다. 특히 매부리봉에서 함께 최후를 마친 임헌근, 임승조 부자의 이야기는 주저하던 포수들의 양심에 불을 질렀다. (626쪽)

방현석 작가가 13년을 함께 한 '범도 루트'를 짚어가는데, 손끝이 시리다.

<범도>2

* " 양반들의 입맛대로 불들어둘 수 없었던 것들이 전설이 되었지요. 서산대사와 홍길동이 그랬지요. 임꺽정과 장길산을 도적으로 값을 매긴 양반들의 말과 글을 이긴 것이 백성들이 만든 전설이었잖아요. ... "

" 진포와 현창하, 안국환이 전설입니다. 일격필살의 여성 저격수이자 작전참모 진포, 열여섯 살의 청년저격대장 현창하, 하루에 백 개의 적정을 탐지하는 도주 안국환, 이들은 지금까지 어느 전쟁에서도 보지 못한 영웅이었어요. ...

저는 일본 육군의 신화가 된 하세가와의 직할 부대를 이긴 진포와 현창하, 안국환의 이름을 양반들이 말로 글로 깎아내릴 수도, 고쳐 쓸 수도, 지워버릴 수도 없는 전설로 만들고 싶습니다."

" 젊은 그애들을 전설로 만들어 하세가와의 신화를 무너뜨리고 우린 죽자, 이 소리지?"

"네." (19쪽)

* 전쟁은 나라와 나라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쟁을 벌여야 할 상대인 일본이란 나라는 있었지만 정작 그 일본과 전쟁을 할 주체인 우리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꾼 조선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의 주체로 나서기는커녕 일본을 상대로 싸우는 우리를 '비적'으로로 규정했다.

"난 우리가 여든 번 넘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서도 왜 몰리기만 했는지를 <파란말년전사>를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소." (157쪽)

* 안중근이 단총을 꺼내 보이는 순간 나는 이미 그가 기어코 단독 작전에 착수했음을 직감했다. 단총 저격은 근접전이었다. 몸을 빼서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작전이었다. 그런데 안중근은 태연자약했다. 선비 출신의 천주쟁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배포였다. (255쪽)

* 러시아어로 올라지는 '정복하자', 보스토크는 '동방'이었다. 동방을 정복하자. 올라지보스토크는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빼앗은 러시아가 붙인 이름이었다. (362쪽)

* " 레닌이 이끄는 노동자 농민, 인민의 정권이 쏘비에트 정권입니다."

" 죽은 전봉준이 살아서 돌아왔는가. 세상에 그런 정권이 어디 있단 말이야?"

" 있습니다. 동학보다 낫습니다. 여자도 장관이 되는 그런 나랍니다."

" 여자가?"

" 하바롭스크에 들어선 극동 쏘비에트 인민정부의 외무장관이 여잡니다. 그것도 조선 여잡니다. 이름이 김알렉산드라입니다."

신기한 일이었다. (383쪽)

* 김 표트르 세묘노비치를 모르십니까. 조선 이름으로 김두서 말입니다. 조선 노동자들에게는 떼인 노임을 다 받아내준 '철도 노조의 전설'이고, 중국인들에게는 로씨아 군대에 붙잡힌 의화단을 구해준 '조선의 천사'로 불렸단 말입니다."

"의화단이 무엇이오?"

" 중국의 동학 비슷한 겁니다. 조선에 일본군이 들어와 동학난을 진압했듯이 중국에서는 로씨아군이 들어와 의화단의 난을 진압했지요. 로씨아군 통사로 징집된 김표트르가 로씨아군에 잡혀 죽게 된 중국인을 노선 옷으로 갈아입혀 구해낸 게 수백 명이 넘었단 말입니다. ... 그분은 평새 그렇게 조선사람 중국 사람 가리지 않고 어려운 노동자들을 돕다가 갑자기 과로로 쓰러져 허망하게 돌아가셨지요.

(393쪽)

- 김두서는 김알렉산드라 (김수라) 의 아버지다. 나는 김두서를 보며 쉰들러를 떠올렸다.

* "홍장군. 가지고 있는 건 자기 재산이 아니오. 자기가 쓴 것이 진짜 자기 재산이지요. 그러니 우당 이희영 선생 형제들이야말로 얼마나 큰 부자들이요?"

나는 그의 다음 말이 궁금했다.

" 쓰기 전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재산이오. 쓰지 않은 재산은 자신의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잘 써야겠는데, 홍장군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걸 내 어찌 거절하겠소." (426쪽)

- 페티카 최재형이 군자금 백만 루블을 두 번에 걸쳐 만들어주었다.

* 아침에 개미가 대열을 이루어 바삐 이동하고, 제비가 낮게 날면 사냥을 나가지 말아야 한다. 비바람이 치기 전에 먹이를 찾아 서두르는 것이다. 천둥번개가 엇갈려 치면 강을 건너지 말아야 한다. 폭우로 물이 불어 돌아올 수 없다. 열두 살의 나에게 신포수가 가르쳐준 것들이었다. (537쪽)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성공하고, 밀정에 의해 진포와 김종천이 어이없이 스러지고.

겨울 눈보라 속을 헤치며 북만주로 퇴각한다.

독립을 꿈꾸며... 독립을 기다리며

* 에필로그

그의 마지막 직업은 극장 수위였다. 그의 유해를 한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한 카자흐스탄 정부는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문서 한 장을 공개했다. 카자흐스탄 국립중안 문서보관소에 보관중이던 그의 '취업명령서'였다.

 

홍범도, 1939년 3월 25일부터 원 1 백 루블의 봉급을 받고 고려극장의 수위로 근무한다.

(637쪽)

* 고려극장이 크질오르다에서 우슈토베로 옮겨가면서 그는 수위의 자리를 잃엇고, 1943년 가을 몸져누웠다. 그는 최후가 다가왔음을 예감했다. 극장 수위로 일하며 모아둔 돈을 털어 잔치를 열었다. ....

그리고 열흘 뒤인 1943년 10월 25일 그는 눈을 감았다. (639쪽)

<쓰지 못한 이야기> 에서 그들의 그 후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그들에게 행한 우리 정부의 처사에 어이없고 기가 찬다.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지... '작가의 말'처럼 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