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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친화력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칠부능선 2024. 9. 29. 22:29

페북에 장희창 선생의 장대한 해석을 읽고 주문했다.

어려운 해설보다 소설은 재미있다. '독일 문학 최초의 사회 소설로 평가받은 걸작' 이란다.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쓰지 않았다는 괴테, 그러나 경험을 그대로 쓴 것은 한 줄도 없다는 괴테의 말이

아리송하게 들린다.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이야기이기도, 불륜 소설이기도 하다.

친화력이란 두 물질이 서로 상호작용으로 새롭게 결합하는 현상을 뜻하는 화학용어다. 부모의 반대로 결혼에 이르지 못한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배우자가 사망하고야 재혼을 했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에두아르트의 친구 대위와 샤를로테의 양녀 오틸리에가 함께하며 엇갈린 열정에 치닫는다.

분별력과 도덕은 열정을 잠재우지 못한다. 비극적 종말은 당연한 귀결이라 오히려 아쉽다.

아름답고 순진하기만 한 오틸리에가 성녀라니... 구원의 여인상인 사려깊은 샤를롯테가 왜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내 참.

* 거지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당국의 보호 하에 있으므로 거지에게 동냥을 거절할망정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거지의 권리를 내세우자, 이우아르트는 마음의 평정을 완전히 읽고 말았다.

.... 대위가 말했다.

" 동냥은 주는 게 맞아. 하지만 직접 주는 건 좋지 않아. ....

이 마을의 한쪽 끝에는 술집이 있고, 다른 쪽 끝에는 선량한 노부부가 살고 있어. 이 두 곳에 자네가 적은 액수의 돈을 맡겨놓게. 그러고는 마을로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마을에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뭔가를 얻어 가게 하는 거야. 두 집이 마침 성으로 이르는 길목에 있으니까 성으로 올라가려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두 곳을 지나가지 않을 수가 없지."

" 그럼 당장 그렇게 하세." 에두아르트가 말했다. (81쪽)

* (미틀러는) 도덕적으로 혼란한 일이 벌어졌을 때 배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배우지 않은 사람들을 돕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그 문제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에두아르트가 있는 곳을 수소문해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서둘러 그를 찾아갔다. (186쪽)

 

* 깊은 도덕적 근본이 없는데도 공손함이 밖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다. 밖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표시와 근본을 동시에 전수해 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공손함이 있다. 그것은 사랑과 비슷하다. 사랑으로부터 외적 행동의 가장 편안한 공손함이 우러나온다.

자발적으로 남에게 종속된다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상태다. 그런 사랑이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258쪽)

* "두통때문에 또 고생하시는 건가요?" 미틀러가 물었다. "고통스러워요." 에두아르트가 대답했다. "그래도 두통이 싫지는 않아요. 그게 오틸리에를 생각나게 하니까요. 어쩌면 그녀도 지금 왼팔로 머리를 바친 채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마도 나보다 더 심하게요. ..." (372쪽)

* "그대의 목소리를 이제 다시 들을 수 없단 말이오? 나를 위해 한마디 해주고 다시 살아나지 않겠소? 좋아, 좋아요. 내가 그대의 뒤를 따르리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말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녀는 그의 손을 힘껏 붙든다. 그녀는 사랑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깊게 숨을 쉬고 천사같이 말없이 입술을 움직거린 후 있는 힘을 다해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말한다. "살아 있겠다고 저에게 약속해요!" 그리고는 그녀는 곧장 뒤로 쓰러진다.

"약속하리다" 그가 그녀를 향해 소리쳤지만, 그 소리가 그녀에게 가닿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396쪽)

* 성녀를 떠올리며 잠든 그의 모습 또한 성스럽다고 할 수 있었다. 샤를롯테는 오틸리에 옆에 그의 자리를 마련했도, 그 납골당에는 다른 누구도 안치되지 않도록 지시했다. 이러한 조건 하에 그녀는 교회와 학교, 성직자와 교사들을 위해 상당한 액수의 기부금을 증정했다. (405쪽)

4쪽의 주와 31쪽에 달하는 번역가 장희창 선생의 해설 < 도덕적 편견 저 너머에서 사랑과 용기를 설파하는 괴테의 실험 소설> 이 이어진다.

- 해설

* 토마스 만이 보기에 이 소설은 "대담하고 심오한 간통 소설"이다. (417쪽)

 

* 눈앞에 있지 않은 것과 눈앞에 있는 것이 서로 뒤얽히는 기묘한 장면, 그리하여 눈은 오틸리에를 닮고, 몸은 대위를 닮은 아이가 태어나고 만다. 아이의 존재는 곧 이중 불륜의 결과였다. 기발하면서 엽기적인 설정은 애정 없는 사랑의 비극성과 황량함을 투시하게 한다. 이러한 불륜 장면에 당대의 작가 장 파울은 불편한 심경을 밝힌다. "이 대목의 정신적 불륜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실제로 불륜을 저질렀더라면 차라리 더 윤리적이었을 것이다" (426쪽)

 

* 괴테가 예술과 자연, 다시 말해 소설과 현실에 관한 지식을 서로 연결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믿는 것은 이탈리아 여행 동안이었다. 두 영역을 파고드니 그 둘에 내재된 법칙이 점점 유사하게 보였고, 이것이 이후 그의 작품 창작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괴테가 <색채론>을 완성하기 위해 기울였던 끈질긴 관찰과 실험 정신은 <선택적 친화력>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4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