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방향을 버리면 바다가 열린다 / 차미란

칠부능선 2024. 8. 26. 22:23

차미란 작가는 2년 전 등단작 <춘봉 씨와 속헹 씨>부터 남달랐다. 사회문제를 돌아보며 글쓰기에 대한 치열한 열망을 토로했다. 준비된 신인이라 반가웠다.

기대대로 첫 에세이가 단숨에 읽힌다. 여행기로 발표하려고 작심을 한 글이다. 그야말로 기획출판이다. 남들의 여행를 바라보며 아쉬웠던 일을 홀로 여행하며 세세히 풀어놓았다. 중간중간 소개하는 책들도 적절하고 친절하다. 여행한 이야기를 곁에서 조근조근 들려주는 듯하다. 푹 빠져서 들었다. 아타까운 장면, 가슴 쓸어내는 순간도 연신 끄덕이며 페이지를 넘겼다. 오래 다지고 연마한 솜씨로 거침이 없고 편안하다. 잘 읽지않는 '해설'까지 과하지 않아서 계속 끄덕거리며 읽었다.

 

1장 라오스, 라오스는 내가 못 가 본 나라다. 마르셀 에메의 『생존시간 카드』에 나는 영화 '인타임'을 떠올렸다.

2장 좌충 우돌 대만 <바퀴벌레와 겸상> 에서 빵 터졌다. 가오슝 노천식당이 떠올랐다.

3장 북인도, 너무도 훤히 그려진다. <구걸이라는 직업> . 인도는 10번은 가야한다는 말에 캬~~ . 난 두 번 다녀온 것으로 족하다.

4장 태국, 오랜 전 아무 생각없이 다녀온 곳에 또 다른 '생각'을 넣어준다.

5장 북해도, 나는 세 번 다녀왔지만 아직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여행기 곳곳에 글쓰기에 대한 열렬한 갈망이 이심전심을 끌어낸다. 책을 덮으며 나는 반성모드가 되었다.

차미란 작가의 열정과 성실에 박수보낸다.

* 나는 여행할 때 숙소를 혼자 쓴다. ...

....

내겐 여행지에서 그날 분량의 글쓰기에 집중해야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글이란 게 떠오를 때 써두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쓰지 않으면 여행의 이유도 없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어도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다. ...

나는 촉이 밝은 편이다. 낯선 환경에서는 촉이 더 곤두선다. 시판돈 돈콘 섬에서 밤을 맞았다. (41쪽)

* 중년의 나이가 되어 비로소 삶에 정도가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한 사람의 생활인이다. 집주변을 종종거리는 그곳이 내 소속이다. 그럼에도 나는 생활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부단히 몸부림을 쳤다. 삶이 불안하고 흔들릴 때마다 심장 발작을 일으킬 것처럼 한 바구니씩 글을 토해놓곤 했다. 무언가 써놓고 나면 백 년 묵은 아기를 낳은 것처럼 후련했다. (50쪽)

* 나는 풍등에 소설을 잘 쓰고 싶다는 소망을 적었다. 그런 소망을 품고 있는 것조차 내겐 과욕임을 안다. 이제는 마음에서 그 소망을 꺼내 풍등에 실어 날려버리자. 하늘 멀리 날려버리자. 그리고 다시는 그런 소망을 마음에 품지 말자. 이제부터는 글을 잘 쓰려고 하지말고 그냥 쓰자. 무조건 쓰자. 많이 쓰자. (97쪽)

* 나는 종종 글쓰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당시 소설보다 시 부문에서 자주 입선했다. 어느 단체의 청소년백일장에서 장원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학교의 위상을 높였다는 둥 선생님들의 칭찬에 우쭐해졌다. 그날 상장과 상패를 가지고 집으로 갔다. 평소 염세적 성향이 짙은 아버지는 상장의 내용을 찬찬히 읽으시더니 "이딴 게 무슨 밥 먹여주냐. 불쏘시개로나 써라" 하며 부엌 아궁이에다 상장과 상패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여자도 기술이 있어야 밥 먹고 사는 시대다. 그러니 이런 짓 할 생각 말고 간호사가 되어라"하셨다.

그 사건으로 나는 문학을 접었다. ...

...

중년의 나이가 되어 나는 다시 문학으로 돌아왔다. 내 낡은 시간은 시와 소설을 읽으며 조금씩 치유되어가는 느낌이었다. (149쪽)

* 삿포로에서 길을 잃고 두리번거리던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느 길이든 일행과 만날 집합 장소를 찾아가면 그뿐, 정해진 뱡향은 없다. 우리 삶도 그렇다. 어떤 목적이나 방향을 두고 집착하기보다 방향을 버리면 바음에 큰 바다가 펼쳐진다. 길을 버리니 사방이 내가 갈곳이었다. (2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