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번 울면서 읽었다며 다음씨가 가져다 준 책이다.
오이지와 고춧가루와 함께. 잠깐 차 한 잔 마시고 갔다. 그제, 오우가 모임날이었다.
다시 성당 봉사일로 바쁜 몸이 되었다. 앞으로 임기 3년 '죽었다' 생각하기로 했다고.
천직인듯 봉사하는 그를 만나고 나면 난 자꾸 부끄러워진다.
다음씨 감성에 착 붙는 내용이다.
박노해가 본명 박기평으로 산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다.
그의 빛나는 감성이 싹트고 자라던 텃밭이 훤히 그려진다. 좋은 어른들과 나쁜 선생, 좋은 선생이 곁에 있었고, 어려서부터 심지깊은 올곧은 정신은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의 유산이다.
가슴 뻐근한 순간은 많았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연신 끄덕이며 마음으로 그의 등을 토닥였다.
잘 커줘서 참 고마운 소년이다. 박 기 평.
* " 아들, 엄니 말씀 잘 듣고 잘 모셔야 쓴다. 엄니는 말이다. 내가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인이다. 아부지가 동지들과 겨울 산으로 피신 다닐때 한밤중에 무장한 자들이 우리집에 쳐들어 와 나를 내놓으라며 불을 지르려는 것을 엄니가 혼자 힘으로 막아냈단다. 저리 고운 사람 안에 장군이 들어있는 것이제. 아부지 일이 잘돼야 하는디 ... 시운이 좋지 않구나... . 평아, 엄니 잘 지켜드리고 있거라. 다음번에는 같이 꿩 사냥을 해서 맛난 꿩 떡국을 끓여주마." ( 40쪽)
* "할무이 할무니이, 가지 말어. 가면 안 돼" 울먹이고 말았다.
" 아가, 사람이 나이 들면 다 주름지고 닳아지고 흙이 되는거시제. 그랑께 눈이 총총할 때 좋은 것 많이 담고 좋은 책 많이 일고, 몸이 푸를 때 힘 쓰고 좋은 일을 해야 하는 거제이. 손발 좀 아낀다고 금손 되겄냐 옥손 되것냐. 좋은 때 안 쓰면 사람 베린다. 도움 주는 일 미루지 말고 있을 때 나눠야 쓴다잉. 다 덕분에, 덕분에 살아가는 것인께." (70쪽)
* 선생님은 매일 자기 돈으로 귀한 초를 사서 켜 놓아 주셨고, 나 때문에 퇴근도 안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긴 날들을 그랬던 것이다. 책에 빠져든 내가 몇 시간 만에 일어나 어둑해진 도서실 문을 나서면 내 등 뒤에서 찰카당 문을 잠그고 그때야 밤길을 걸어 퇴근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 나는 도서실을 가지 않았다. (171쪽)
* 선생님이 허리를 숙여 나를 일으키더니 자신의 귀한 단벌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감아주었다.
"나가 별명이 '수그리 선생'이라메. 다들 잘나고 똑똑헌 세상에서 우리 같은 수그리 종자 몇 명쯤은 안 있어야 쓰겄는가. 하하하. 그래도 나가 힘 있는 놈들 앞에선 안 그라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제. 나 먼저 가네. 잘 커 불소잉. 하하하" (201쪽)
* 고백하자면, 광선이랑 짝꿍을 한 건 좋아서가 아니었다. 다들 냄새나는 옷을 입고 맨날 꼴찌만 하는 광선이랑 짝꿍하기 싫어했다. 나도 예쁜 여자애랑 짝꿍 하고 싶었고 공부 잘하고 빛이 나는 아이랑 짝꿍 하고 싶었다.
아무도 앉고 싶어 하지 않는 광선이랑 짝꿍을 한 것은 솔직히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였다. 맨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광선이를 볼 때면 내내 마음이 까시로왔다. (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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