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따뜻함을 찾아서 / 왕은철

칠부능선 2024. 7. 21. 22:09

뜨거운 날에 <따뜻함을 찾아서>라니... 실없이 맘이 뜨거워진다.

여름엔 땀을 흘려야 해. 이렇게 세뇌를 하면서 선풍기도 멀리하면서 읽었다.

동아일보에 '스토리와 치유'라는 제목으로 쓴 칼럼을 선별한 글이다. 짧은 글이다. 그럼에도 책이나 음악, 그림, 작가를 데려와 정신차릴 마음을 불러온다.

'축복이나 은총처럼, 거리에서 우연히 들은 음악처럼'

작가의 말이 소박하다.

달관에 이른듯. 거듭 읽어야 할 구절이 많다.

* "차라리 세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것은 알아야 한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절반쯤 읽다보면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이것'은 사육신의 기개를 일컫는다.

...

그런데 그의 거대담론에는 빠진 것이 있다. 여자들의 고통이다. 세조는 1456년 9월, 단종 복위 사건 주모자들의 집안 여자들을 공신들에게 나눠주었다. 영의정에서 도승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수하들이 적게는 두 명에서 많게는 여섯 명에 이르는 여자들을 물건처럼 받았다. 영의정 정인지는 박팽년의 아내를 포함하여 넷을 받았다. 170명에 달하는 여자들이 노비가 되어 그렇게 배분되었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치욕스러운 것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은 그것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119쪽)

* 재일교포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지만, 역설적으로 이방인으로서의 실존이 이타미 준의 건축과 예술의 원천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타자와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실존적 삶이었다. 그가 소통에 특별히 주목하게 된 것은 그래서였다. 그는 어디에 건축물을 세우든 "풍토, 경치, 지역의 문맥'을 중요시 했다. 건축은 본질상 자연을 침해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이물감을 없애고 자연과 조화를 이뤄야 했다.

그가 세운 제주도의 방주교회도 관계와 소통이 핵심 주제였다. ...

노아의 방주를 모티프로 한 건물은 자연 앞에 자신을 낮춘 결과물이었다. 겸손한 낮춤의 건축미학.

(198쪽)

* 라이오헤드의 노래는 결국 우리마저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노래가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바뀔 때 우리는 이야기 속의 '나'가 된다. 감정이입의 힘이다. "그녀는 진짜처럼 보여 / 진짜처럼 느껴져 / 나의 플라스틱 사랑 / 나는 천장을 뚫고 폭발할 것만 같아." 결국 '나'도 우리도 가짜에 지친다. 가짜 지구에 가짜 나무, 거기에 가짜 아름다움과 가짜 사랑까지 온전한 것이 정말이지 하나도 없다. 노래를 문명비판으로 들을 수 있는 이유다.

이 노래는 황경운동에 열심인 라이오헤드, 특히 톰 요크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치유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짜가 지배하는 실존적 상황을 노래로 전달하는 것은 그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당위였다. 요크가 이 쓸쓸한 노래를 만들고 나서 운 것은 절망에 압도되어서였는지 모른다.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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