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칠부능선 2024. 7. 8. 18:33

죽음의 수용소 풍경은 그동안 알고 있던 것의 심화 버전이다. 그러나 정신의학 측면을 장착해서인지 참혹한 장면이 객관화되어 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두 부류로 나뉘는 현상, 죽음 앞에서 인간 존엄성을 지킨 승자의 기록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죽음에게로 끌려가고, 담담히 운명을 마주하다 보면 죽음을 넘어선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희망을 만들고 퍼트리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

살아 남은 자의 귀한 말씀에 귀를 세운다.

1984년 판에 부친 서문 -

이 책이 영어판 73쇄에 이르렀다. 19개 언어로 출판되고 영어판 하나가 250만 부나 팔리는 기록을 세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이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제목 자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문제을 다룰 것으로 기대하며 이 책을 선택했을 것이며, 그만큼 그들에게 절박한 문제라는 것이다.

* 평소에 나는 학생들에게 거듭해서 이렇게 타이르곤 한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

- 서문에서

*냉담한 궁금증

... 나도 어떤 낯선 상황에서 제일 먼저 궁금증이 고개를 드는 것을 경험했다. 언젠가 등반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절체절명의 순간 가장 먼저 궁금증이 생겼다. 이 위기에서 내가 살아날 수 있을 까? 아니면 두개골이 박살 날까? 부상을 당한다면 어떤 부상일까?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냉담한 궁금증이 심지어 아우슈비츠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이것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기 마음을 어느 정도 분리시켜 어떤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이런 마음가짐을 가꾸었다. 우리에게 다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런 것을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41쪽)

*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 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시를 통해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69쪽)

*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릿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 되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109쪽)

 

* 해방의 체험

육체는 마음보다 거부감이 적은 법이다. 육체는 처음부터 새롭게 얻은 이 자유를 잘 활용했다. 드디어 우리 육체가 게걸스럽게 먹어 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며칠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한밤중에도 우리는 먹었다. 한 사람이 먹어 치우는 음식의 양이 심히 놀라웠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이웃에 있는 친절한 농부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갔는데, 거기서도 그는 먹고 또 먹고 그리고 커피까지 마셨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혀를 풀리게 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하고 또 했다.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139쪽)

* 이 원고(첫 수용소에서 압수당한)를 새로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가혹한 환경에서 나를 살아남도록 했던 것은 분명하다. 바바리아 수용소에서 발진티푸스에 결려 고열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중에 원고를 다시 쓸 때 도움이 되도록 나는 작은 종잇조각에 수없이 많이 메모했다. 강제 수용소의 어두운 막사 안에서 읽어버린 원고를 다시 쓰는 작업은 내가 죽음의 위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58쪽)

*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195쪽)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학자, 철학자다. 19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 박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온 가족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간 후, 프랭클은 3년 동안 네 군데의 수용소를 거쳤으나 끝내 살아남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본인의 ‘체험’을 통해 발견한 치료법이 바로 로고테라피다. ...

프랭클은 모든 사람에게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비참한 상황을 극복하고,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의미 없어 보이는 고통도 가치 있는 업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랭클 연구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사람 중심’이었고, 오로지 환자를 통해 배우고, 환자의 말에 귀 기울였던 의사이자 가슴 뜨거운 치유자였다.

..... 미국정신과협회는 정신치료에 대한 공헌을 인정해 빅터 프랭클에게 1985년 오스카 피스터상을 수여했다. 93세에 영면에 들기까지 강의와 집필을 쉬지 않았고, 40권의 책을 남겼다. 1997년 심부전으로 삶을 마감하고, 비엔나 중앙 묘지 유대인 구역에 잠들어 있다. - 알라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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