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그래도 괜찮아 / 사노 요코

칠부능선 2024. 9. 22. 20:56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통쾌하게 읽은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사노 요코의 책을 주문했다.

가볍고 편한 책인데, 한참 걸렸다. 그때의 시원한 문장을 기대했는데 왜 이리 싱겁지... 이런 생각이 들어 밀어두었다.

어젯밤 다시 잡아 다 읽고 보니, 이게 전형적인 수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시점이 아니라 10대, 20대의 이야기들이 많다. 그의 주변인들의 특별했던 감흥을 전한다. 남다른 시선과 반응에 가슴이 뜨듯해진다. 사노 요코는 2010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더 살았으면 솔직한 노인의 시선으로 더 공감할 글을 썼을 텐데... .

옮긴이의 말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쟁쟁한 작가들과 아들 히로세 겐, 그리고 전 남편이자 일본의 '국민 시인'인 다타니와 슌타로까지 함께 모여 『100만 분의 1회의 고양이』 라는 책을 냈다고 한다. 첫장에 그의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 와 사노 요코 씨에게, 사랑을 담아'라고 쓰여있단다.

또 맘이 뜨듯해진다.

* 좁은 거실에 가득 들어찬 친척들 속에서 선생님은 가만히 앉아 들었고, 이따금 차를 마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피리 같은 소리를 내며 마지막 숨을 들이쉬고 아버지는죽었다.

섣달그믐날 늦은 밤이었고 이미 설날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팔을 오른손으로 내내 쥐고 있던 선생님은 "세시 십삼 분입니다 "라고 말한 뒤 왼손으로 안경을 벗고 왼팔을 눈에 갖다 대며 울었다. (52쪽)

* 내 아버지는 언짢음 덩어리 같은 사람이라서 아무래도 다른 집 아버지가 평범하게 보였던 것 같다.

그 콧수염을 살짝 기른 아버지는 에리가 고등학생 때 뇌출혈로 눈 깜짝할 사이에 죽고 말았다. 의사도 죽나 해서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90쪽)

* 기억이 흐릿한 고등학교 시절, 미쓰에 선생님만은 또렷하고 선명하게 떠오른다.

"톨스토이의 『정쟁과 평화』를 학창 시절에 읽었어요. 책상 앞에 앉아서 저녁때부터 읽기 시작했지요. 읽고, 읽고, 또 읽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 되고 있더군요. 학교는 안갔어요. 그 뒤로 앉아서 내리읽었답니다. 큰아버지가 한번 상태를 보러 왔어요.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지요. 하루 종일 읽고, 읽고, 또 읽었어요. 다음 날 동틀 무렵 마지막 페이지가 끝났답니다."

휴유, 하고 숨을 내뱉은 것은 학생들이었다.

"젊은이란 그런 거예요."

하지만 우리 중에서 선생님 같은 젊음으로 톨스토이를 읽고 또 읽는 학생은 없었을 것이다.

....

나는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다. 지식과 교양을 익히고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에게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남편과 역시 쓰다주크대학에 들어간 두 따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선생님한테 직접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사'적인 생활을 무엇 하나 말한 적이 없었다.

'공'과 '사'를 의연하게 구분하는 것이 내게는 지적인 여성의 절도처럼 여겨졌다.

....

생각지도 못하게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미쓰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어. 얼마 전에 뵈러 갔었는데 말이야, 벌써 여든 가까이 되셨던 것 같은데 엄청 건강하셨거든. 으음, 그때도 여전히 공부하고 계시더라. 공부는 하면 할 수록 어렵다니, 대단하시지. 무슨 얘기였더라, 나이 먹은 뒤로 뭐가 의지가 되느냐고, 가족인지 친구인지 여쭤봤지. 그랬더니 선생님은 지체 없이 '친구예요'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는 거 있지. 엄청 단호하게 말씀하셨다니까."

(179쪽)

* 가장 곤란할 때 나를 구해준 것은 저축이 아니었다. "괜찮아"라는, 그 집마루에서 당신이 해준 말이었다.

미치코에게도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눈부신 인생의 사건은 없었을지 모른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만 겪으며 살아왔다. "괜찮아"가 일천만, 일억의 저금보다 우리를 살려왔다. (1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