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중독자 김미옥이 感으로 읽고 覺으로 썼다는 이 책을 나는 각을 잡기 위해 아껴가며 읽었다.
마이너 세계의 보석을 찾아내는 기쁨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짧은 소감문이지만 정수를 전해준다는 믿음이 간다. 매일 한 권 이상을 읽고 쓴다는 그를 누가 당해낼까.
나는 종일 글렌굴드가 연주하는 바흐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늘었다.
위태로운 청춘을 무사히 건너게 해준 것이 독서였다면 나를 읽으켜 세운 것은 글쓰기였다. 오랜 세월 동안 내 글의 유일한 독자는 나였다. 글쓰기는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생각하면 나는 죽고 싶을 때마다 글을 썼다.
부정과 거부로 점철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내가 얻은 것은 공황장애였다. 의사도 고치지 못한 증상을 낫게 한 것은 글쓰기였다. 글을 쓰면 공황장애가 있다는 것도 우울증이 있다는 것도 잊었다. 그 어떤 약보다 효력이 탁월했다. 글은 나를 치유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책머리에' 중에서
* 남편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두고 가출하지만, 그녀는 혼자 가정과 재산을 지킨다. 본능적인 욕망과 맹목적인 사랑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는 남자는 '인간적'이고 이혼을 거부해서 남자의 사랑을 불륜으로 만드는 여자는 '합리적'으로 보인다.
'선택적 친화력'은 화학 용어다. 두 물질이 만나 상호작용하여 선택에 따라 결합하는 현상을 말한다. 괴테는 문학가이면서 동시에 과학자였다. 그런 그가 이 소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들어있지 않다."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모든 순간을 살았다는 고백이었다. (48쪽)
『선택적 친화력』 괴테 지음
* 가난은 죄였다. 판사는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소년을 소년원에 보냈다. 겁 많고 배고팠던 소년은 일 년 만에 돌아왔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왜소한 그가 어떤 짓을 당했는지 세월이 흘러 알았지만 나는 그의 주먹이 아팠다.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오면 미치거나 보복을 다짐해야 했지만, 그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대신 자기보다 약한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이유 없이 나를 폭행하고 자기 손목을 그었다. 나는 벌레처럼 기어서 그가 흘린 피를 걸레로 닦았다. (53쪽)
이글은 김미옥의 작은오빠 이야기다. '물푸레나무 아래' 서 꿈꾸는 가족사, 눈물 없는 통곡이다.
* 주안의 유순함과 순종은 루쉰에게 고통이었을 것이다. 인간에겐 타인의 아픔을 체감하는 공감력이 존재한다. 자기에게 시집와서 방치된 채 노예처럼 일하는 여자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1906년 결혼식을 올린 이후 각자 사는 아들이 답답해서 어머니가 물었다.
루쉰의 대답은 "그 사람과는 대화가 안 통합니다"였다. (128쪽)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 차오리화 지음
*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환자가 온갖 고통을 호소하면 그렇게 물었다.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환자의 변명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 의미와 책임을 직조하는 것, 이것이 실존적 분석, 로고테라피의 목적이자 과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192쪽)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 빅터 프랭크 지음
* 책 내용에 눈두덩이 여러 번 화끈해졌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진정한 성공이란 무슨 일을 하든지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 강봉희가 세상에 보내는 '두 데나리온'이 묵직하다. (211쪽)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 어느 장례지도사가 말해주는 죽음가 삶에 관한 모든 것』 강봉희 지음
* 바흐(1685~1750)는 자식이 스무 명이었고 먹고 살기 위해 쉬지 않고 곡을 썼다. 그는 살아서 인정받지 못했는데 그의 악보가 정육점의 포장지였다거나 헌책방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는 그의 곡 상당수가 버려지고 분실되었음을 일컫는다. 바흐는 홀로 작곡할 때 비로소 숨을 쉬었을 것이다. 음악은 그의 일이었지만 그의 피신처였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외톨이였던 글렌에게 최고의 형벌은 피아노 곁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혼자 있기 위한 도구이자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였던 피아노는 그에게 신앙이 된 것 같다. 나는 18세기이 바흐를 20세기의 굴드가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264쪽)
『뜨거운 얼음』 케빈 바자나 지음
* 그는 성철스님의 피부색을 그리기 위해 생가를 찾아 방구들에서 황토를 채취했다. 그 안료로 성철스님을 그림 종이 뒷면을 골백번 바르고 말려 앞면으로 색이 배어 나오게 했다. ...
화가 김호석은 내가 알기로 선승의 초상화, 진영眞影에 있어 독보적인 인물이다.
그의 원칙이 독특했다.
나는 지조와 절개를 지킨 의인, 외길로 뜻을 이룬 사람으로 존경하는 마음과 미술사적 도전 등이 아니면 붓을 들지 않 는다.
(300쪽)
『모든 벽은 門 이다』 김호석 지음. 2016
* 케테가 음울하고 어두운 작가라는 선입견이 있었다면 이 책은 기존의 생각을 전복할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인간을 사랑했는지, 춤추는 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편지, 메모, 스케치, 비밀 일기, 지인과 후손들이 기억하고 생각하는 콜비츠를 읽으면서 나는 두 저자가 마치 오랜 시간의 고분 층을 손으로 파헤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게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사람을 말하라면 나는 '케테 콜비츠'라고 말하련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우는 밤을 생각한다. (324쪽)
『케테 콜비츠 평전』 유리 빈터베르크 • 소냐 빈터베르크 지음.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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