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독특한 형식이다. 쉼표와 '그리고' 로 연결하며 나아간다. '그리고'가 걸려서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문장이다. 17쪽에 이르러 마침내 마침표를 만나고서야, 아~ 이 작가는 의도적으로 쉼표와 침묵을 버무렸구나, 하며 읽었다. 전작처럼 여전히 이어지는 반복을 만나며, 욘 포세를 '21세기의 베케트'라 한 것도 이해가 갔다.
마침표를 미루며, 수없이 반복되는 '쉼표 ,' 와 '그리고' 의 의미를 생각한다. 마침표 자리에 들어가 앉은 쉼표가 자꾸 걸린다. 이 관성의 힘은 세다.
아침 (탄생)과 저녁(죽음) 그 사이 삶은 죽은 자의 회상으로 그린다. 약간의 긴장은 있었지만 평온한 아침을 열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맞이하는 저녁에 안도한다. 저런 삶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생이라는 것도. 극적인 무엇 없는 평범한 삶이 잔잔히 빛난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한 세계. 말이 없고, 경계가 없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소시민의 평범한 일생, 색다르지 않아서, 특별한 한 세계를 만나다.
마침표를 끝까지 유보한 걸 보면 생은 또 이렇게 이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Ⅰ
* 그리고 방에서 억눌린 비명이 들려온다 그리고 올라이는 늙은 안나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조금 웃어보이기도 하는가
조금만 참아요, 늙은 안나가 말한다
사내아이라면, 요한네스라고 부를겁니다, 올라이가 말한다 (10쪽)
* 아이가 할아버지처럼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리라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기는 하겠지, 올라이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있거나 너무 가까이 있다. 그리고 그는 전지전능하지도 한다. 그리고 그 신은 홀로 이 세상과 인간들을 지배하지 않는다, (17쪽)
* 그리고 올라이는 그대로 서서 마르타와 크고 무거워진 그녀의 가슴에 안긴 어린 요한네스를 바라본다, 지금껏 그녀의 가슴이 이렇게 크고 무거워 보인 적은 없었다, 크고 흰 가슴은 가는 혈관들로 뒤덮여 있
다 그리고 마르타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누워 있다, (22쪽)
Ⅱ
* 요한네스는 잠에서 깨어나 뻣뻣하고 찌뿌듯한 몸으로 오래 거실 옆방의 거튼으로 가려놓은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어서 일어나야지 하면서 그대로 누워 있다, 바깥 날씨는 다시 흐려졌을 테니까' 보나마나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돌풍이 불겠지, 하늘은 잿빛이고, 습하고 을씨년스러울 것이다, 이맘때면 하루하루가 그렇듯이, 오늘은 뭘 해야 하나? 온종일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고, 에르나가 죽은 후로는 마치 모든 온기가 그녀와 더불어 떠나버린 듯 집안이 너무도 썰렁해졌다, (33쪽)
* 아냐 내가 지금 이렇게 방에서 뭉그적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니, 이럼 못쓰지, 요하네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일어난다 그리고 문득 몸이 너무 가볍다, 무게가 거의 없는 듯하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이거 이상한걸, 뼈마디와 근육 어디 아프고 뻐근한 데도 없이, 그는 가뿐하게 일어나 앉는다, 이거 완전히 풋내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군, 요한네스는 침대 한쪽에 앉아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친김에 일어나지 뭐, 생각한다 그리고 일어서면서 그는 조금쯤 비틀거렸을까, 그렇다해도 가뿐한 느낌이다, 몸속도 머릿속도 날아갈 듯 가벼운걸,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35쪽)
* 싱네, 싱네, 내가 안 보이는거냐, 요한테스가 말한다
그리고 싱네는 마주 다가와 그의 몸 한가운데로 쑥 들어가더니 그대로 그를 통과해 지나친다 그리고 그는 싱네의 온기를 느낀다, 하지만 나를 통과해 지나가다니,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싱네도 생각한다, 아니 이게 뭐지, 뭔가 마주 온 것 같은데, 그녀를 향해 마주 오는 그곳을 분명히 보았고, 옆으로 비껴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해 다가왔고 그녀는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을 통과하는 순간 너무도 차가웠다, 차갑고 무력했을 뿐, 다른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섬뜩했는데,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을 거다, 그랬다간 사람들이 미쳤다고 생각할 거야, 싱네는 생각한다, (115쪽)
* 이제 자네도 죽었다네 요한네스, 페테르가 말한다
오늘 아침 일찍 숨을 거뒀어, 그가 말한다
내가 자네의 제일 친한 친구여서 나를 이리로 보낸 거라네, 자네를 데려오라고 말이야, 그가 말한다
그러면 게망은 뭐하러 걷어올렸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 삶과의 연결을 끊어야 하니 뭔가는 해야 했지, 페테르가 말한다
(130쪽 )
*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걸 저도 알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속을 게워내야 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자애롭고 선한 분이었어요, 싱네는 생각한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간다, 그리고 오늘 바다는 저리도 잔잔하고 푸르게 빛나는데, 싱네는 생각한다, 요한네스, 아버지, 요한네스, 아버지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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