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 24

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마음이 분주할 땐 시집이 좋다. 시집 열두 권의 선집이다. 옮긴이의 해설까지 500쪽에 가깝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가장 진솔하고 소박한 수상 소감이라는 평가를 받은 수상 소감의 맺는 말이다. "시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아무 것도 없다. 시인이 되긴 글렀나 보다. * 두 번은 없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놀자, 책이랑 2022.05.21

스승의 날이라고

3인과 윤교수님을 모셨다. 두 주 전에 예약하고 드디어 '헬로 오드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왁자한 분위기때문에 당황스러웠는데 음식이 모두 맛있어서 용서가 되었다. 차는 넓은 식물원?으로 이동해서 마시니 좀 나았다. 가끔씩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감사했다. 아, 스승의 날이라고 수필반에서 좀 과한 를 받았다. 나도 과하게 한 턱 쏘는 걸로. 364일은 '학생의 날'이다. 나도 학생이다. 학생이 좋다. 91세 윤교수님, 84세 문선배님... 함께 한 27년 세월 사진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지만 이 청보라색 꽃이 어찌나 이쁜지...

아들에게 2

준비 없이 광야로 나간 아들아 투표에는 집단지성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현실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진심'만 통하는 정치가 요원하다는 것을 나는 느꼈는데, 너는 여전히 환한 표정이구나. 무슨 일을 하건 그것이 최상이라던 네 습성도 여전하고. 그렇다해도 난 네가 아깝다. 정치하며 칭찬받기는 우주여행 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에, 난 아들이 아깝다. 어제 개소식을 했는데 어미인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모두 고맙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너는 또 그것을 최선으로 여기리라 믿는다. 옥상 천막사무실을 생각한 건 잘 한 일이다. 인사말 중에 사람들이 웃은 구절이 있었다는 것도 다행이다. " 저는 20대 후반에 첫 직장을 국회의원실 인턴으로 시작했고 제가 모시는 국회의원을 빛내주는 보좌진 역할만큼은 ..

태경시경과 노래방, 당구장

지난 토욜, 딸네 식구가 와서 자고 갔다. 사위가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함께 놀 수 있는 걸 생각해서 당구장을 몇 번 다녔다고 한다. 저녁 전에 당구장 행~~ 오랜만에 승원, 승민이 다녀가고... 밥을 안 먹고 가서 걸린다. 저녁은 삼겹살로.... 포식을 하고, 수수백년만에 노래방을 갔다가 한밤중에 귀가. 월욜 주문한 생화 화분이 안 와서 태경이가 급하게 만든 종이꽃 ㅋㅋ 중2 태경이 아빠보다 크고, 중1 시경은 나보다 크다. 태경인 약간 쑥스러워하고 시경인 잘 논다. 나는 도무지 생각나는 노래가 없다. 다시 노래 공부를 해야할까보다. 애들 부르는 노래 가사가 직설적이라 세태가 읽혀진다. 가끔 이런 시간 갖는 거 좋겠다.

하늘의 피리 소리 / 맹난자

오래 잡고 있었다. 쉬이 넘어가지 않는다. 아니 쉬이 넘길 수가 없다. 꼭꼭 씹어 먹어야 소화가 되는, 씹을수록 고소하고 영양 많은 견과같이, 하루하루 양식으로 곱씹는다. 가까이 두고 자주 펼쳐 읽으며 나를 일깨울 것이다.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한 시대의 병은 사람의 '양식 변화'로 치료된다"고 말한 이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는 사람의 '사유'가 삶의 양식 변화를 일으킨다며 삶을 변화시켜야 진짜 철학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생각이 바뀌어야 삶이 달라진다. 하여 이 책에서는 동서양의 철학자, 그리고 경전과 고전문학 속에서 자신의 편견과 오류를 정정하고 바른 사유의 전환을 돕는 내 나름의 안구眼句를 뽑아보았다. 그러나 내 시야란 자신의 한계까지임을 밝힌다. 그동안 생의 기준이..

놀자, 책이랑 2022.05.13

황홀한 노동 / 송혜영

황홀한 노동 송혜영 ​ 그들이 왔다. 긴 머리를 야무지게 뒤로 묶고 왼쪽 귀에 금빛 귀걸이를 해 박은 대장을 선두로 그들은 우리 마당에 썩 들어섰다. 젊은 그들이 마당을 점령하자 이끼 낀 오래된 마당에 활기가 넘쳤다. 대장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자재며 장비를 풀어놓았다. 그리곤 진군하듯 헌 집을 접수해 나갔다. ‘두두둑’ 오랜 세월 소임에 충실했던 노쇠한 양철지붕이 끌려 내려왔다. 이가 빠진 창문도 급히 몸을 빠져나왔다.. 제 구실을 못한 지 오래된 굴뚝이 뭉개졌다. 마당 가득 유월의 때 이른 폭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로, 귀 뒤로, 싱싱한 뒷덜미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셔츠의 등판은 금세 땀에 젖어 몸에 척 들러붙었다. 나는 바람 한 점 없는 이른 무더위가 내 탓인 것만 ..

산문 - 필사 + 2022.05.12

네 손의 기도 / 조동우

네 손의 기도 조동우 돌아가신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였던 그 환자를 처음 만난 건 면허를 따기 전이었던 2016년 여름, 한 대학병원의 산부인과 수술실에서였다. 당시 나는 교수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니며 책에서만 보던 것들을 실제 임상 현장에서 배워나가던, 막 병원 실습을 시작한 본과 3학년 학생이었다. 외과계 실습을 돌면 수술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주어지곤 한다. 수술에 절대 방해가 되지 않게끔 떨어져 있되, 생생한 현장을 하나라도 눈에 더 담으며 배우는 것. 수술을 참관하는 실습 학생의 가장 큰 덕목은 ‘적극적인 병풍’이 되는 것이다. 내가 참관했던 수술은 고령의 암환자에게서 자궁을 들어내는 비교적 큰 수술이었다. 수술실 한구석에서 산부인과 레지던트 선생님 옆에 서서 마취가 시작되기를 기다..

산문 - 필사 + 2022.05.12

조카들과

조카들 모임에 우리 부부를 초대한다. 남편은 자기는 안가겠다고 빼다가 '이번까지만'이라며 함께 갔다. 장조카네 세컨하우스다. 집안에 있던 작은 개들은 다 구름다리를 건너고 마당에 세 마리가 있다. 아파트에는 고양이가 네 마리 있다. 집 앞이 미리네 성지 순례길이다. 자임네서 얻어다 준 금낭화가 자리를 잡았다. 숫컷 두 마리는 잘 싸워서 줄을 매놓았다. 순한 암컷은 목줄없이 맘대로 다닌다. 산 물이 흐르던 연못은 윗집 공사중에 훼손되어서 지금은 물이 안 내려온다. 조카의 아들, 동환이가 바이크를 타고 와서 합류했다. 그동안 집에서 하던 음식을 집근처 '153 산골가든'에서 닭볶음과 백숙, 보리굴비로 점심을 먹고 집에서는 후식만하니 간단하다. 처음 본 곰표 맥주로 입가심, 커피와 케잌, 떡을 또 먹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