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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구지가문학상 수상 소감 -조정인

제1회 구지가문학상 수상 소감 ​ 내 안에 웅성거리는 무수한 타자들​ ​구지가(작자미상)는 주술성이 강한 역동적인 노동요입니다. AD 40~50년 경, 김해 구지봉에서 신(神)의 계시가 들려와 모든 백성들이 구지봉에 모여 신의 말씀대로 흙을 파헤치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노래를 불렀다 해요. 300여 명의 군중이 춤추며 발을 구르고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로 싼 금빛 그릇이 내려왔다지요. 그릇에는 6개의 황금알이 담겼는데 알들은 6명의 귀공자로 변했다지요. 귀공자들은 각각 6가야의 왕이 되었고요. 그 중 제일 큰 알에서 나온 귀공자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라고 합니다. ​ ​아득한 시간성 속에 고고한 숨을 내쉬는 신화의 한 가운데, 구지가가..

산문 - 필사 + 2022.01.21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 조정인

제1회 구지가 문학상 수상작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조정인 지금은 산사나무가 희게 타오르는 때, 나여. 어딜 가시는지?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내가 나를 경유하는 중이네. 흰 터번을 쓴 어린 수행자 같은 산사나무 수피를 더듬는다. 내가 나를 더듬고 짚어보고 헤아려 보듯, 나는 재에 묻혀 움트는 감자의 눈, 움트는 염소의 뿔, 움트는 붉은 승냥이의 심장, 봄 나무가 내민 팥알만 한 새순, 겨울 끄트머리에 걸린 시샘달* 방금 운명한 망자의 움푹 꺼진 눈두덩, 생겨나고 저무는 것들 속에 눈뜨는 질문. 나여, 나는 어디로부터 나를 만나러 산사나무 하얗게 타오르는 이 별에 왔나? 어제 나는 스물일곱에 요절한 나를 조문하고 왔네. 꽃 같은 얼굴이 웃고 있는 영정 앞에 예를 갖추고 향을 ..

시 - 필사 202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