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96

본색 / 최민자

본색 최민자 등산로 난장에서 수면양말을 샀다. 다섯 켤레 만 원짜리 줄무늬 양말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덜렁거리며 구불텅한 에움길을 걸어 내려온다. 난장이나 재래시장의 물건들은 통상 그렇게 검은색 '봉다리'에 담겨 손바꿈을 한다. 봉지의 색깔이 검은 것은 신통찮은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편일 터이나 검은 봉다리는 그것 자체로 그 안의 물건들이 고급이 아님을 공공연히 발설해 버린다. 잡티와 잔주름을 가리려고 한 화장이 나이를 더 드러내 보이고 큼지막한 명품로고가 그걸 든 주인이 가짜라는 사실을 본의 아니게 광고하고 말듯이, 감추려 할수록 드러나 보이는 것, 본색이란 대저 그런 것 아닐까.

산문 - 필사 + 2018.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