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94

제1회 구지가문학상 수상 소감 -조정인

제1회 구지가문학상 수상 소감 ​ 내 안에 웅성거리는 무수한 타자들​ ​구지가(작자미상)는 주술성이 강한 역동적인 노동요입니다. AD 40~50년 경, 김해 구지봉에서 신(神)의 계시가 들려와 모든 백성들이 구지봉에 모여 신의 말씀대로 흙을 파헤치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노래를 불렀다 해요. 300여 명의 군중이 춤추며 발을 구르고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로 싼 금빛 그릇이 내려왔다지요. 그릇에는 6개의 황금알이 담겼는데 알들은 6명의 귀공자로 변했다지요. 귀공자들은 각각 6가야의 왕이 되었고요. 그 중 제일 큰 알에서 나온 귀공자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라고 합니다. ​ ​아득한 시간성 속에 고고한 숨을 내쉬는 신화의 한 가운데, 구지가가..

산문 - 필사 + 2022.01.21

피가지변(皮哥之辯) / 피천득

피가지변(皮哥之辯) 피천득 ‘皮哥가 다 있어!’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皮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 두터운 전화번호부에도 皮가는 겨우 열이 될까 말까 하다. 현명하게도 우리 선조들은 인구 소동이 날 것을 아시고 미리부터 산아 제한을 해왔던 모양이다. 皮가가 金가보다 이상한 것은 하나도 없다. 우간다 사람에게는 닥터 김이나 닥터 피나 다 비슷하리라. 그래도 왜 하필 皮씨냐고? 옛날에 우리 조상께서 제비를 뽑았는데 皮씨가 나왔다. 皮가도 좋지만 더 좋은 성(姓)이었으면 하고 다시 한 번 뽑기를 간청했다. 그때만 해도 면 직원들이 어수룩하던 때라 한 번만 다시 뽑게 하였다. 이번에는 毛씨가 나왔다. 毛씨도 좋지만 毛는 皮에 의존한다고 생각하셨기에 아까 뽑았던 皮를 도로 달래가지고 돌아왔다. 그 후 대대로..

산문 - 필사 + 2021.12.17

한국수필의 골계(滑稽)이론 / 김진악

한국수필의 골계(滑稽)이론 김진악 골계이론 뒤돌아보기 1960년대 우리나라는 웃음의 땅이 아니고 웃음을 잃어버린 세상이었다. 그 암울한 시대에 태평하게 수필을 논하고 웃음을 말한 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윤원호 교수였다.(이하 경칭 생략) 그는 논문 을 이화여대 80주년 기념논문집(1966)에 발표하였다. 순 한글로 제목을 붙인 이 글은 수필문학과 여러 갈래의 웃음과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논문이었다. 전쟁의 상처가 남아있던 1950년대 후반, 학계에서는 여러 학자가 참여하여 골계의 본질을 따지는 맹렬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이때 정립한 골계이론이 그 후 문학작품의 골계성을 연구하는 이론의 전범이 되었다. 아마 윤원호는 그들이 논의한 웃음의 논리를 수필작품에 적용해보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였다..

산문 - 필사 + 2021.12.16

땡감 설(說) / 조후미

땡감 설(說) 조후미 사내가 계집을 찾는 것은 세상 이치요 음양의 조화라. 사내와 계집 사이만큼 끈적이는 것이 하늘 아래 또 있을런가. 알고 보면 그도 그럴 것이. 그네들은 태생이 자궁이니 찐득찐득 끈적거리는 것이 당연지사 명약관화로다. 허나, 화접(花蝶)이 꿈을 꾸되 동상이몽이렷다. 계집은 마음이 동하는 사랑을 원하고 사내는 몸으로 사랑을 구하니, 계집을 찾는 사내의 욕심은 앞뒤 잴 것도 없이 아랫입이구나. 비극도 이런 비극이 따로 없다. 나온 곳이 같고 먹고 자란 것이 같으나 생각은 다르니 도무지 이해는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더란 말이냐. 계집 마음을 얻으려고 해구신에 비아그라 좋다는 약 모다 먹고 쇠구슬에 해바라기로 꽃 장식을 했것다. 허나 야동이란 야동 다 섭렵해도 알 수 없는 것이 계집의 마음이..

산문 - 필사 + 2021.11.12

지막리 고인돌 / 조후미

지막리 고인돌 조후미 엔날에는 전라남도 진도를 옥주沃州라고 했어라. 땅땡이가 겁나게 넙고 지름징께 그케 불렀다고 합디다. 요새도 뱃꾼보다 농사꾼이 더 많애라. 째깐 매한 섬이지라잉. 지도를 피고 진도 동쪽을 찬찬히 살피믄 첨찰산 끄터리에 지막리라는 마을이 걸쳐있어라. 뒷산에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응께 상당히 유서 깊은 동네것지라잉. 동네로 나댕기는 질 한피짝에는 찔쭉한 도팍이 서 있는디라 어르신들이 그 독을 슨돌이라고 부릅디다. 마을에 슨돌이 있다는 것이 뭔 뜻인지 아요? 그것은 엔날꼰날부터 거그서 사람들이 살았다는 뜻이제라. 시방은 서울 같은 도시서 사람들이 오굴오굴 몰려 살지만 선사시대 때는 맹수들이 무사서 섬에서들 살았당께라. 섬에서 살다가 차근차근 육지로 퍼져나간 것이지라. 선사시대부터 사람..

산문 - 필사 + 2021.11.12

날마다 새로운 시작, 오늘이다

리뷰 ┃ 서평 날마다 새로운 시작, 오늘이다 노정숙 에세이 《피어라, 오늘》을 중심으로 박효진 수필은 열려있어야 한다. 형식의 자유로움뿐 아니라 일상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수필이 작가의 직접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의 문학이라고는 하나, 작가는 사고의 확장으로 보다 유연하게 작품 속을 유영할 수 있어야 한다. 윌리엄 블레이크(영국의 신비주의 시인, 1757~1827)는 “인식의 문이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인간들에게 있는 그대로, 무한한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하였다. 윤리나 도덕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틀을 깨고 나와 새로운 나와 만날 때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작가라면 누구나 ‘붓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를 희망한다. 글감을 앞에 두..

산문 - 필사 + 2021.09.18

독서 / 윤오영

독서 윤오영 독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우선 인생체험이란 한 면만 예로 생각해보자. 20년의 체험은 40세를 못 따르고 40, 50년의 체험은 70, 80세를 못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장자(莊子)도 소년(少年)은 대년(大年)을 못 따른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이 장수를 한들 몇백 년을 살 것인가. 수백 년 수천 년의 체험은 오직 독서를 통해서만 얻을 것이니, 연령이 문제가 아니라 독서가 문제인 것이다. 책이 너무 많아 일생을 읽어도 부족하다고 걱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을 꼭 한 번 거쳐야 할 필요가 있는 서적이란 50, 60권이면 족하다. 그중에도 다시 추리면 열 손가락을 넘지 아니할 것이다. 박학다식이니 박람강기(博覽强記)니 하여 널리 알고 많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문 - 필사 + 2021.08.28

인간이 그리는 무늬 / 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이념을 정해 놓고, 그것을 보편적이라거나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하면서 기준으로 사용하는 일은 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폭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치론적 기준을 근거로 해서 세계와 관계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요. 중국의 철학자 노자가 보기에 모든 가치는 중립적입니다. 그런데 공자에 따른 문명은 어떤가요. 禮라고 하는 특정 교화체계를 저기 높은 곳에 걸어 놓고, 백성들을 모두 거기에 통합시키려고 하지요. 통합적 욕구가 발산하는 이런 가치를 진정한 가치로 아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노자가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노자는 기준이 비록 선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준으로 행사되는 한 폭력을 잉태하는 장치일..

산문 - 필사 + 2021.06.07

슬기로운 험담생활 / 최민자

슬기로운 험담생활 최민자 ​ ​ 투표장에 다녀왔다. 맘에 드는 후보도 정당도 없지만 한표의 권리는 행사해야겠기에. 이번 선거 역시 정책경쟁이나 공약검증 대신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한 온갖 네거티브 프레임과 흑색선전 같은 것들로 진영간 대결 양상으로 치달아버린 느낌이다. 남은 재임기간이래봤자 1년 2개월도 안 되니 정책이나 공약이 별 의미도 없겠지만 A후보나 당이 좋아서 찍는게 아니라 B후보나 그 당이 싫어서 다른편에 표를 주는, 나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또는 모르는 사람들이 마음의 벽을 허무는데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과 일치시키는 일보다 그가 싫어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의 공통점을 찾는게 결속력이 훨씬 강하다고 한다. 특히나 그 대상이 사람일 경우, ..

산문 - 필사 + 2021.04.24

라다크 체험기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라다크 체험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드물게 있는 나무들 - 살구나무, 버드나무, 포플러 - 은 혹심한 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땔감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나무들은 조심스럽게 보살펴지고, 그 목재는 건축이나 악기, 도구들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땔감으로는 짐승의 마른 똥이 이용되고 인분은 거름으로 이용된다. 집집마다 퇴비 변소가 있고 모든 쓰레기는 재순환된다. 라다크에 도착한 직후 나는 어느 냇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막 더러운 옷을 물 속에 던져 넣으려 할 때 일곱 살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조그만 여자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소녀는 부끄러움을 타면서 "거기서 옷을 빨면 안 돼요. 아랫마을에서 그 물을 마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소녀는 적어도 일 마일이나 아래로 떨어져 있는 한 마을을 가리켰다. ..

산문 - 필사 + 202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