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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최진석

칠부능선 2021. 6. 7. 13:32

인간이 그리는 무늬

-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이념을 정해 놓고, 그것을 보편적이라거나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하면서 기준으로 사용하는 일은 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폭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치론적 기준을 근거로 해서 세계와 관계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요.

  중국의 철학자 노자가 보기에 모든 가치는 중립적입니다. 그런데 공자에 따른 문명은 어떤가요. 禮라고 하는 특정 교화체계를 저기 높은 곳에 걸어 놓고, 백성들을 모두 거기에 통합시키려고 하지요. 통합적 욕구가 발산하는 이런 가치를 진정한 가치로 아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노자가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노자는 기준이 비록 선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기준으로 행사되는 한 폭력을 잉태하는 장치일 뿐라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보편화된 이념으로 작동해 세계를 구분하고, 바람직하다고 간주되지 못하는 한쪽을 재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노자가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주목하는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연에는 가치론적 기준이 작용하지 않고 그 기분이 목적으로 상정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노자는 기치론적 기준을 보편적인 틀로 사용하지 말고, 개별자들의 자발적 생명력이 마음껏 발휘되게 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노자는 자신의 생각을 ‘거피취차(去彼取此)’라고 표현했습니다.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말이지요. 즉 저 멀리 걸려 있으면서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론적인 이념과 결별하고 여기 있는 구체적인 개별자들의 자발적 생명력에 주목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노자의 이러한 주장은 공자의 생각과 극명히 대비됩니다. 즉 모든 개별적 존재들이 보편적 가치로 합의된 예를 기준으로 하고, 그 예(禮)에 일치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는 이념을 주장하는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와 정반대 입장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노자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구체적 세계에 있는 개별적 존재자들에게는 추구해야 할 보편적 이념도 없고, 세계와 관계할 때 사용해야 할 절대적인 가치 기준도 없으며, 내용적으로 정해진 분명한 도달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 것이죠. 보편적인 이념의 형태로 행사되는 기준이 없는 한, 개별자들이 각자의 삶을 자율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권리는 빛을 발하게 됩니다.

  개별적 존재들이 보편이라는 모자를 쓴 특정한 이념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오로지 각자의 자발적 생명력에만 의지해서 약동하는 상태를 노자는 無爲라고 표현합니다. 삶을 영위하는 어떤 사람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랄지 ‘바람직한 일을 해야 한다’라는 당위의 굴레를 벗어나 아무런 기준이나 목적성의 제어를 받지 않고 하는 자발적 발휘, 그것이 바로 무위하는 삶입니다.

  하여 노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귀띔합니다. 기준이나 목적의식을 덜어내고, 약화시키고 또 약화시키고 나면 결국 무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말이지요. 무위의 경지란, 쉽게 말해,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제멋대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모두가 멋대로 한다면 곧바로 도덕적 혼란의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걱정하시겠지만, 노자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외려 멋대로 해야 제대로 될 뿐 아니라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어요. 노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볼게요.

 

  멋대로 하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다(無爲而無不爲)

  《도덕경(道德經)》 37장

 

  노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멋대로 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기도 하지만, 사회도 비도덕적 혼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절로 교화되고, 저절로 올바르게 되며, 저절로 부유해지고, 저절로 소박해진다.”고 보았어요.

  노자의 목소리를 계속 들어봅시다. 그에 따르면, 통치자는 백성들이 제멋대로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제멋대로 하는 것이 주가 되면, 특정한 기준을 강요하는 위치에 있는 지도자는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집니다. 노자가 “최고 수준의 통치 단계는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 겨우 알고, 통치자의 존재를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 단계”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멋대로 하는 힘은 각자의 욕망에서 나옵니다. 모든 사람에게 원래부터 갖추어진 것으로 인식되는 이성에 의해 지탱되는 이념의 틀 속에서, 멋대로 하는 힘은 결코 싹틀 수 없습니다.

  공자는 인간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인간인 성인들이 만들고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공인된 ‘바람직한 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원칙’ 그리고 ‘좋다고 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따르고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이와 정반대였죠. ‘바람직한 일’보다는 ‘바라는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좋은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곧 보편적 이성에서 벗어나 개별적 욕망에 집중하라는 얘기일 테지요. 개별적 욕망에 집중해야 멋대로 할 수 있고,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습니다.

 

 -최진석의 철학에세이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