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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험담생활 / 최민자

칠부능선 2021. 4. 24. 21:46

슬기로운 험담생활

최민자

 

 투표장에 다녀왔다. 맘에 드는 후보도 정당도 없지만 한표의 권리는 행사해야겠기에. 이번 선거 역시 정책경쟁이나 공약검증 대신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한 온갖 네거티브 프레임과 흑색선전 같은 것들로 진영간 대결 양상으로 치달아버린 느낌이다. 남은 재임기간이래봤자 1년 2개월도 안 되니 정책이나 공약이 별 의미도 없겠지만 A후보나 당이 좋아서 찍는게 아니라 B후보나 그 당이 싫어서 다른편에 표를 주는, 나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또는 모르는 사람들이 마음의 벽을 허무는데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과 일치시키는 일보다 그가 싫어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의 공통점을 찾는게 결속력이 훨씬 강하다고 한다. 특히나 그 대상이 사람일 경우, 특정한 제3자에 대해 함께 험담하며 맞장구치는 일만큼 빠르게 의기투합을 하게 되는 일도 드물다는 것이다. 공통의 적을 함께 비난함으로써 동질감을 느끼고 욕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일이 누구를 칭찬하고 응원하는 일보다 친밀감 생성에 더 높은 별점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여러 사람이 모인데서 어떤 사람을 칭찬해도 어지간해서는 파급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그 사람 좀 그래 ..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언사나 비평이 섞인 말들이 오가면 금세 평판이 안 좋아짐과 동시에 이자까지 붙어서 더 빨리, 더 왕성하게 퍼져나간다. 친한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이 경쟁심이나 질투심을 더 느끼는 법인지 한 발 멀리 있는 사람보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뒤에서 더 섭섭하게, 의외의 언행을 하는 것을 보고 남몰래 내상을 입은 적도 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일정 함량의 증오나 질투심 같은 사악한 씨알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어 그것들이 발화되면 반대급부로 쾌감 비슷한 것이 생성되거나 증폭되게끔 되어 있는 것일까. 서양 역사 속의 마녀사냥이 아니더라도 어느 마을에나 바보로 놀림받거나 욕 먹는 사람이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온라인 콘텐츠들도 온화하고 건전한 것보다 공격적이고 자극적이 내용이 더 많이 읽히고. 천진한 아이들 세계에서조차 왕따나 이지매 같은 현상이 드물지 않으니 인간에게 있어서도 공격성은 자기방어 본능의 선제적 현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천성이 소심하고 용기가 없어 공격받을 만한 이슈들은 마음 구석에 구겨넣고 일상적이고 소소한 글들이나 겨우 끼적이고 있어서인지 아직까지 내 페북에는 고맙고 긍정적인 댓글들이 넘치는 편이지만 소신 있고 사회참여적인 글들을 올리는 지인들 중에는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위해를 가하는 악성 댓글들로 인해 심리적 손상을 입는 분들도 꽤 계신 듯하다. 대체로 자기 존재감이나 정체성이 약한 사람일수록 익명일 때엔 더 공격적으로 부화뇌동한다고는 하지만 갈수록 세상살이가 힘들다보니 마음속에 누적된 좌절과 분노를 엉뚱한 대상에게 화풀이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무리들도 적지않은 것 같다. 오프라인보다 파급력이 더 강하고 위협적이기까지 한 디지털 마녀사냥이, 펜데믹 수준으로 치달아가는 시대가 적잖이 우려스럽기도 하다.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 말이나 글에서 험담이 가치를 발하는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덜 떨어진 연기로 억지웃음이라도 선사하는 맹구가 팬들의 사랑을 받듯이,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화화 하고 깎아내릴 때 사람들은 더 쾌감을 느낀다. '자서전의 가치는 필자가 얼마나 자기 흉을 보고 있나에 의해 결정된다. 자기를 흉본 부분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가짜다.'

조지오웰의 말이다. 일상의 경험이나 신변잡사들을 소재로 삼는 수필도 마찬가지. 은근슬쩍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숫제 자기자랑으로 도배를 하는 글들이 난무하는 것에 대해, 매원 박연구 선생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글이란 게 자기 자랑하기 위해 쓰는 거 맞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자기 내면을 드러내 공감을 얻기 위해 쓰는 거니까. 자랑하되 눈치채이지 않게, 아니 겨우 눈치만 채게 해야 상급이지 드러내놓고 자기를 미화하고 자랑질 하는 것은 하급이다.' 맞는 말씀이다. 글은 곧 사람이므로 부러 자랑을 하지 않아도 그가 쓰는 문장이나 어휘, 글의 근육 같은 것이 어쩔수 없이 그 사람의 품격이나 내면적 층위를 드러낼 밖에 없을 테니. 찌질이들은 제 흉이 들킬까봐 전전긍긍하지만 잘난 사람은 자기를 흉보면서 즐거워한다. 자기를 희화화 하고 함께 웃을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열등감 대신 유쾌함의 기술을 획득한 최상급 내공의 소유자들이다. 아직도 글이 내 모자를 빛내줄 장식깃털쯤은 되어주었으면 하는 음흉한 마음을 숨기고 욕심 없는 척 허허실실 하는 나,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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