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마음의 감옥 / 이산하

칠부능선 2021. 1. 15. 15:55

마음의 감옥

이산하

 

  "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분온시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도 있었습니다.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 '제주 43 70주년' 문재인 대통령 추념사 중에서

 

 2018년 봄 '제주 43 70주년 추념식' 에서 사회자인 이효리 가수가 <생은 아물지 않는다>라는 내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곧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이산화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이란 말까지 나왔다. 혼자 TV를 보고 있던 나는 이 모든 게 환청처럼 들리면서 그 순간 현기증이 일어났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산하라는 이름이 30년 만에 유배가 풀렸구나…'

 

 일국의 대통령이 사석도 아닌 공식석상에서 호명한 일이니 충분히 울컥하며 감격스러울 법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내 가슴이 폐허로 변한 지 너무 오래였고, 한순간에 절망의 뿌리를 거두기에도 너무나 긴 세월이었다. 그동안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유배된 상태였다. 나는 나를 운구하며 살았다.

 

  '이산하 시인'이라는 말을 내가 1987년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된 이후부터 석방되고 나서까지 '극좌파 시인' '빨치산 시인' '빨갱이 시인'으로 낙인찍혀 43만큼이나 좌우 모두 기피하던 금기의 이름이 되었다. 몸은 감옥에서 석방되었지만 세상 속 내 이름은 여전히 갇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창살 없는 감옥이자 마음의 감옥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힘겹고 외로웠다. 설상가상 내 필화사건의 공안검사였던 황교안 장관이 총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승승장구하여 매스컴에 도배될 때마다 잊었던 고문의 악몽이 되살아나 병원을 찾기도 했다. 그 세월이 30년이었다. 어느 날부터 문득문득 '차라리 30년을 감옥에서 살걸.' 하는 자조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43 항쟁 70주년을 맞아 『한라산』개정판을 냈다. 시집 후기에도 썼듯이 '내 젊은 날의 비명이자 통곡'이었던 시를 30년 뒤에 하나씩 천천히 쓰다듬으며 다듬었는데 그 과정이 마치 유골 발굴 현장에서 흩어진 뼈를 주워 하나씩 맞춰가는 것처럼 가슴이 떨렸다.

 

 43 항쟁은 토벌대의 공세로 10월에 이미 전세가 기울었지만 청년들은 계속 한라산으로 올라갔다. 어쩌면 지금 내가 시를 쓰는 것도 그 가을, 이미 퍠색이 짙은 싸움을 위해 입산하는 그 청년들의 심정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유배는 풀렸지만 늘 진실만 말해야 한다는 멍애가 여전히 내 목에 걸려 있는 한 내 마음은 늘 먼저 베인다. 그 베인 자리 아물면 내가 다시 벨 것이다. 그러니 내 생은 결코 아물지 않는다. 아물면 죽음이다.

 

  거듭 말하노니

  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 이산하,<서시>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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