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필사 +

밤 / 이태준

칠부능선 2021. 1. 7. 13:44

이태준

 

 

 동경서 조선 올 때면 늘 밤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하였다.

 저기도 주야가 있지만 전등 없는 정거장을 지나보지 못하다가 부산을 떠나서부터는 가끔 불시 정차 같은 캄캄한 곳에 차가 서기 때문이다. 무슨 고장인가 하고 내다보면 박쥐처럼 오락가락하는 역원들이 있고 한참 둘러보면 어느 끝에고 깜박깜박하는 남폿불도 보인다.

 밤, 어둠의 밤 그대로구나! 하고 밤의 시간이 아니라 밤의 실물을 느끼곤 하였다. 그리고 정말 고향에 돌아오는 것 같은 아늑함을 그 잠잠한 어두운 마을 속에서 품이 벌게 받는 듯하였다.

 "아이 정거장이 쓸쓸하긴 하이. " 

 하고 서글퍼하는 손님도 있지만 불 밝은 도시에서 지냈고 불투성이 정거장만 지나오면서 시달릴 대로 시달린 내 신경에는 그렇게 캄캄한 정거장에 머물러주는 것이 도리어 고마웠다. 훌륭한 산수山水 앞에 서주는 것만 못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불 없는 캄캄한 밤을 즐겨 버릇하였다. 그 후 동경 가서는 불 업이 노는 회會를 만들어 여러 친구와 다음날 해가 돌아오도록 긴 어둠을 즐겨본 일도 있다.

 

 밤이 오는 것은 날마다 보면서도 날마다 모르는 새다. 그러기 때문에 낮에서부터 정좌하여 기다려도 본다. 닫힌 문을 그냥 들어서는 완연한 발걸음이 있다. 벽에 걸린 사진에서 어머님 얼굴을 데려가 버리고 책상 위에 혼자 끝까지 눈을 크게 뜨던 꽃송이도 감겨버리고 나중에는 나를 심산深山에 옮겨다 놓는다.

 그러면 나는 벌레 우는 소리를 만나고 이제 찾아올 꿈을 기다리고 그리고 이슥하여 닭 우는 소리를 먼 마을에 듣기도 한다.

'산문 - 필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다크 체험기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0) 2021.03.09
마음의 감옥 / 이산하  (0) 2021.01.15
벽 / 이태준  (0) 2021.01.07
가을 바람소리 / 김훈  (0) 2020.12.29
글쓰기의 어려움 / 오민석  (0) 2019.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