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919

정호경 선생님

4시 넘어 최 샘이 전화를 했다. 여수에서 오신 정호경 선생님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며 함께 하잖다. 마침 아무일 없는 날이라 부랴부랴 저녁을 차려드리고 나갔다. 롯데 앞에 가니 두 분이 나와계신다. 율동입구 고가에서 저녁을 먹는데,,, 참 적게 드신다. 정호경 선생님은 83세, 젊어선 광화문의 대성학원 국어선생님이셨단다. 수필은 아니 문학은 재미있어야 한다. 쉽고 재미있게 써서 감동을 주어야 한다. 옛날이야기, 공자 맹자, 구태의연한 한 수필을 보면 살기가 싫어지신단다. 이 열정,위트, ㅋㅋ 잠시 고개가 숙여진다. 회장하는 건 안 남아도 좋은 수필은 남는다. 회장하느라 글 못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좋은 수필을 남겨야 한다. 인용문, 현학적, 이런걸로는 수필 안된다. 너무 착하게 쓰는 것도 식상하다. ..

여행, 시작

여행은 떠나기 전의 설렘부터 여행의 시작이다. 날짜를 기다리고 준비하며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부터 그것을 일이라 여기면 피곤하고 힘들지만 여행의 시작으로 잡으면 한없이 설렌다. 거기다 나 처럼 남은 식구가 있는 사람은 집안 청소 정리, 먹거리 준비까지 해두고 떠아야 하니 이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이것이 귀찮아서 못 떠난다는 친구도 있다. ㅋㅋ 하지만 일을 즐기면 천국이고, 일이 고되다고 여기면 지옥이다. 여행조차도 그 힘든 것을 왜 하느냐는 사람도 있다. 후진국은 절대 사양이라는 친구, 돈을 얹어 준대로 안 간다나. 내 여행의 원칙은 체력이 될 때 험한 곳, 먼곳부터 돌아보기다. 완전한 할머니가 되면 의욕도 체력도 따라주지 않을테니까 그때는 가깝고 안락한 곳으로나 다녀야 한다. 작년 중국문학기..

폭풍처럼, 지나가다

올해부터 설을 우리집에서 지내기로 했다.토욜 오전 9시, 출근하듯 시간 맞춰 아들과 며느리가 왔다. 동서는 녹두빈대떡을 맡아서 해오기로 하고 안 왔다. 동그랑땡은 아들이 반죽하고, 만들고, 며느리는 꼬지를 끼고, 동태전을 부치고. 식혜와 나박김치는 며칠 전에 해 두었고,고기 재는 것과 나물 무치는 것도 며느리 보는데 했다. 미리미리 후다닥 해치워도 될 일이지만.. 교육적으로다.ㅋㅋ 설날.큰집, 세째 집, 동서네, 조카들(시누이딸들) 아침상에 앉은 식구들이다. 어른들은 12시 전에 가시고, 나머지 식구들은 더 놀다 2시 넘어 가고, 이어서 딸네 네식구가 왔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오는 것인데... 얘들도 오늘 모두 해치우고 내일 쉬려고 한단다.태경이 시경이 한복을 곱게 입고 왔다. 나는 예정대로 4시에 친정..

2월 첫 결혼식

서울대성당 2월 첫 결혼식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듣는 파이프 올겐 소리에 울컥, 했다. 지은 죄가 많은 탓인지 난 성가만 들어도 자주 울컥거린다. 유열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신부님의 말씀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사랑은 견디는 것이라는 말에 끄덕끄덕, 영성체를 신랑신부만 하고 혼배미사를 마쳤다. 이렇게 간략하게 하는 건 처음이다. 신부님이 신랑신부에게 읽어준 시다. 둘이서 하나가 되어 - 김후란 밝은 이 자리에 떨리는 두 가슴 말없이 손잡고 서 있습니다 두 시내 합치어 큰 강물 이루듯 천사가 놓아준 금빛다리를 건너 두 사람 마주 걸어와 한자리에 섰습니다 언젠가는 오늘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듯 소중한 시간이 있어 주리란 것을... 그때 우리는 이슬 젖은 솔숲을 거닐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철인,

금요일,점심에 생일 모임, 지인 넷이서 생일을 구실로 만나서 밥 먹고 선물을 건네는 모임이다. 선배님이 아프셔서 좀 일찍 끝났다.저녁 호텔 결혼식, 혼주 수준에 맞춰 축의금을 내야 하는지, 내 수준에 맞춰 내야할 지 잠깐 갈등,씩씩하게 내 수준에 맞췄다. 김태우가 축가를 부르고 33살 동갑 신랑이 친구와 셋이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완전 귀여웠다. 신부는 의젓했다. 토요일, 1시 여의도 결혼식 참석.완전 추운날이다. 토욜이라서 버스를 탔다. 과천으로 돌아서 한번에 여의도에 도착하기는 했다. 울렁울렁 멀미 증세.사람들 만나고 대충 점심을 먹고, 1월 다섯 번 결혼식 참석. 끝.지하철로 이동.4시 반포에서 친구 셋이 만나다. 일년에 한두 번 만나는 중딩 때 친구다. 나와는 완전 다른 세상에서 노..

겨울비

겨울비가 왔다. 탄천을 가로질러 이매역까지 걸어서 오갔다. '특별한 결혼식'을 마친 친구가 5인방 점심을 냈다. 어려서부터 아들 둘을 독립적으로 키운다고 초딩 때 여름방학에 미국을 보내면서 형이랑 동생을 다른 비행기 태워서 보낸 용감한(?) 부모다. 그들의 교육방식에 맞춰 아들 둘은 씩씩하게 자라더니, 집을 얻는 것도 결혼의 모든 비용도,아들이 했단다. 이들 부부는 중간에 큰 사건이 있어서 모든 재산을 잃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들이 더욱 여물어진 듯하다. 잃은 건 상처고 충격이지만, 얻은 게 확실하니 감사한 일이다. 크게 잃어야 크게 얻는 것인지. 푸근한 겨울에 흐믓한 이야기로 긴 점심시간을 보냈다. 걷는 길에 쌓여있던 눈이 녹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