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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밤 / 허정분

산밤 겨우내 먹겠다고 욕심껏 주워 온 눈에 띄는 대로 수탈의 표적이 되어 김치 냉장고서 겨울을 난 산밤을 깐다 미라처럼 생이 정지된 어리고 말랑한 밤벌레의 주검 어느 모태가 슬어 논 유전자의 보금자리였을까 한 생을 일용할 약식이었건만 서서히 굳어가는 추위와 맞서 굴을 파고들며 버티던 생애도 비정한 추위 앞에서는 다 무용지물이었듯 썩어서 먹을 수 없는 산밤 내다 버리며 소나무 먹는 송충이나 밤을 먹는 밤충이나 헛 욕심에 눈먼 나도 식충이처럼 평생을 먹거리 포로로 끌려간다는 생각에서 오싹 전율하고 말았다

시 - 필사 2021.05.12

자기 결정 / 페터 비에리

친구가 작은 딸이 '결정 장애'가 있다고 했다. 무엇이든 얼른 결정을 못 내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중한 성격에서 나오는 폐단(?)이기도 하다. 나처럼 속전속결로 결정하는 사람은 후회가 따른다. '후회는 없다. 돌아보지 않겠다' 고 세뇌했지만 다 속절없다. 괜한 허세다. 돌아보니, 이제 절로 돌아봐진다. 늙은 육신보다 늙은 정신을 두려워했는데, 이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얇은 책인데도 쉬이 읽히지 않고 걸린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열린 3일간의 강연을 정리한 것이라서 그런가. 구어체 번역이 어려운 탓인가.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 그럼, 그럼. *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하..

놀자, 책이랑 202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