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육감 / 이정록

칠부능선 2021. 6. 7. 11:51

육감

이정록

 

 

출발점이 중요하다며

아빠는 우리 관계를 무시한다

첫 만남이 수준 떨어지게

오락실이 뭐냐며 피시방이라고

게임하다가 만난 게 아니라 수행평가 때문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이상한 눈으로 혀를 찬다.

아빠는 한 핏줄이라서 육감적으로 안다며

용돈이 넘쳐나서 오락실까지 다니다고 엄포를 놓는다.

살이 맞닿는 우산 하나로 엄마를 꼬신 아빠는

육감부터 사랑일 시작된 까닭에, 그때

그 짜릿한 감촉이 이성 교제의 잣대가 됐다.

다 너를 위해서 충고한다는, 라떼는

비닐우산처럼 뒤집히지도 않는다.

하여튼 출발점이 중요하다. 

 

    -웹진 《문장》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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