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나이 오십 이전까지 나는 한 마리 개였다'

칠부능선 2018. 11. 16. 00:09

 

  이탁오 평전은

 <관직을 사퇴하다> 부터

벗을 찾아 황안으로 가고, 이단의 가시관을 쓰고,  용담에서 '초담집' ' 관음문' 등 저서를 남기고, 무창에서 봉변을 당하고,

남북을 전전하다, 마성에서 쫒겨나고, 통주에서 유랑하며 그 사이 계속 책을 읽고 책을 쓴다.

76세, <옥중에서 자결하다> 로 마친다.

 

 

 해양무역으로 거상이 된  8대조 선조부터 소개한다. 위험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한 결단과 지혜를 갖춘 선조다.

 이 혈통이란 것이 연연이 이어진 듯,

 우여곡절을 거쳐 이탁오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성까지 잃어버린 처지가 되어, 식솔들을 위해 54세까지 관직 생활을 했다.

 귀거래사를 쓴 도연명이 7품 현령 자리를 시인 식으로 사퇴했다면,  이탁오는 사상가 식으로 관모를 벗었다. 

그때 이탁오는 4품 지부 자리이며 이미 자기 시간을 낼 수도 있는 때였는데 학문에 전념하기 위한 결단이다.

 

 '법률은 큰 틀만 마련하고 예제는 인정에 따르고,   .....

 최상의 법도는 인위적 조치가 없고, 최상의 통치는 소리가 없으며, 최상의 교육은 말이 없음'을 신조로 삼았다.

 

 

  <속 분서>에서 이탁오의 유언이 더 구체적이다.

  - 죽은 뒤에 성 밖 높은 언덕에 남향으로 구덩이를 하나 파라, 두 자 다섯 치 길이로 파서 갈대 자리 다섯 장을 ...

내가 그곳에서 마음이 편하면 그곳이 낙토樂土가 된다. 너무 속된 티가 나지 않게 할 것이며, 남들의 말에 흔들려서

보기 좋게 하는 데 급급하여 나의 본심을 해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

 

  그는 자기의 일생에 평자를 정했다. 관리도 하니고 승려도 아니며, 일개 학자일 뿐이다. 비문을 쓸 때 그가 써달라고 요청한

것은 '선생'이라는 호칭이었다.

  " '이탁오 선생의 묘' 라고 쓴 비석을 묘 앞에 세워라. 글자의 크기는 4천으로 하되, 초의원 더러 써달라고 부탁하라. 그는 필시

주저하지 않고 글씨를 써줄 것이다"

 

  죽은 후, 무덤을 돌보는 일까지 세세히 남겼는데 그는 이미 아무런 미련없이 죽음을 맞을 준비를 했다.

 

  "지사는 구덩에서 뒹굴던 때를 잊지 않고, 용사는 목숨을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 내가 지금 죽지 않고 무엇을 더 기다리는가.

이 목숨을 어서 황천으로 돌아가길 원하다.

 면도칼은 그의 인생에서 비장한 도구가 되었다. 마성에서 '이단'으로 배척당할 때, 머리카락을 자르고 유관을 벗어던져 스스로

이단이란 악명을 선택했다. 그리고 감옥에서 '이단'을 압제하는 데 항쟁하며 목을 그었다.  

  아무것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하고 장렬하게 죽었다.

  동시대사람들 보다 월등하게 앞서고 급진적인 사상의 이탁오, 이지의 슬픈 면이며 위대한 면이다.

 

  56세부터 손에 책을 놓지 않고 붓을 멈추는 일이 없어 62세에 <장서>, <분서>, <설서>의 기본 규모을 갖췄다.

  읽기와 쓰기가 동시에 이루어진 셈이다.

  이탁오에 관한 600쪽 가까운 책, 4권을 다 읽었다. 나는 맹렬하게 읽는데........  쓰기는 두렵다.

  ㅠㅠ

  배고품의 설움도 모르고,  밥벌이의 수모도 겪어보지 않아서 인가.

  이래저래 나는 머리숙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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