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말대가리 뿔> 윤명희

칠부능선 2018. 11. 12. 13:39

 

 

출간을 축하한다고 꽃다발을 바치는 게 가소로운 느낌이 드는 책이다.

나는 인사 메일에 늘 하던 꽃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삶이 누구에는 만화방창이고 누구에게는 만리협곡이다.

가까이 있었다면 따듯한 밥 한 끼 대접하고 등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윤명희씨 얼굴이 떠오른다. 무던하고 수더분하게 생긴 이면에 촘촘한 감성이 내장되어 있다.

장하다고, 잘 살았고, 잘 살고 있다고 박수를 보낸다.

덕분에 무거워진 가을 끝자락이다.

가끔 이런 무거움, 숙연함이 있어 다시 긴장, 감사, 슬픔, 생각 ... 이런 것들을 여미게 된다.

 

 

 

 말대가리 뿔,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데도 내게 맞을 수 있고 나는 아닐지라도 모두는 맞을 수 있는 세상사가 보이지 않는 말대가리 뿔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뿔을 나는 오늘도 만들고 그 뿔로 치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불쑥 그 뿔의 실체 앞에서 뒷걸음질치기도 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봅니다.

- 머리말 중에서

 

 

 

 

간단하게 보낸 내 인사 메일에 답이 왔다. 또 가슴이 찡해진다.

순간순간 깨어서 살겠다고 다짐했던 내 첫 책 서문을 떠올린다.

난 이제 너무 번다하게 늘어져있다. 방전된 듯도 하고....

  


             .........

아침에  토함산 자락을 넘어가다
강아지 한마리를 봤거든요.
시골에서 개도 보고 소도 보는 일이 다반사기에 강아지 보는것은 아무 일도 아니지요.
근데 그 강아지는 도톰한 하얀옷을 입은  하얀 강아지였어요.
산길에 이런 강아지가?  누가 버렸나?
돌아보니 멀리 집 한채만 덩그러니 보이는 산길에 옷을 입은 강아지라니요.
굽이치는 산길이라 차를 멈줄수 있는 공간도 없어 속도를 늦추고 백밀러로 돌아보니 옷은 흙탕에 끌렸는지 

아래로 축 쳐져 있었어요.
뒷차에 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는 건 변명이겠지요.
집으로 데리고 올 수 없었어요.
우린 실내에서는 동물을 키운적이 없거든요.
우리 마당에 데려다 놓는다면 영원히 주인을 잃어버릴것 같기도 하고.
짧은 순간 내 입장부터 열거하느라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근데요.
종일 그 강아지가 따라 다닙니다.
단지 그 강아지가 옷을 입었다는 것이.
마음이 무지 무거웠는데 선생님 메일이 잠시 위안을 주셨어요.
밀린 숙제 하듯이 낸 책이었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가을 산빛에 젖은 선생님을  떠 올리며
윤명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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