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은밀한 시간 / 황현산

칠부능선 2018. 11. 10. 13:51

은밀한 시간

황현산

 

 

  몇 년 전, 그러니까 학생들이 지금처럼 너나없이 핸드폰을 하나씩 지참하고 다니지는 안았던 때의 일이다. 내 강의 시간에 한 학생이 교단에 나와 제가 작성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핸드폰 소리가 들려왔다. 학생들이 모두 자기는 아니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발표하던 학생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종료 단추를 눌렀다. 발표는 무사히 끝났다. 나는 강평을 끝내고, 이 새로운 이기인 핸드폰에 대해서 내 생각을 짧게 이야기했다. “핸드폰을 24시간 들고 다니는 것은 누가 자기를 부르든 24시간 대기하고 있겠다는 말이 아닌가. 옛날 노비의 신분이었던 사람들이야 주인이 부르면 지체 없이 달려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대기를 해야 하는 팔자였지만, 이 민주주의 시대에 자진해서 노비가 되려 하다니 이해할 수 없구나.” 학생들은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모두 웃었다. 웃음 끝에 한 학생이 이렇게 대꾸하기까지 했다. “맞아요, 선생님, 우리 젊은 사람들은 모두 사랑의 노예예요.” 그래서 또 웃었다.

  그런데 나는 농담으로만 그 말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식구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애들은 그 시간에 학교성적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기도 할 것이며, 내가 알고는 제지하지 않을 수 없는 난잡한 비디오에 빠져 있기도 할 것이다. 어차피 보게 될 것이라면 마음 편하게 보는 편이 낫다고 보다. 아내는 그런 시간에 노래방에 갈 수도 있고,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 내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늘 되풀이되는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도 있을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사실 기계를 좋아하는 편이다. 일찍부터 타자기로 글을 썼으며, 컴퓨터도 남보다 먼저 익혔다. 진짜 컴퓨터 전문가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도스 시절에는 동료들 간에 컴퓨터 도사로 통하기도 했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주문하곤 집배원 올 시간에 집 밖에 나가 기다릴 정도의 열정도 있었다. 당연히 컴퓨터에는 온갖 부속 기구를 다 장착했다. 무슨 회합 같은 데 가입하며 신상명세서를 작성할 때는 이름 적고 주소 적고, 이메일 주소란도 당당하게 채워넣을 수 있었다. 그 후 홈페이지주소를 적으라는 난이 새로 생기자 벌써 그 속도를 따라가는 일이 힘겨워졌다. 나는 그 난을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문학동호회의 주소로 메꾸었다. 그러자 그런 문서에 핸드폰 번호를 적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채워넣어야 할 것을 채워넣지 못하면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찜찜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난만은 죽을 때까지 공백으로 남겨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 일도 역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집안 어른이 중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정말로 24시간 대기해야하는 처지가 되니 나도 핸드폰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 사용하면 담배보다 더 끊기 어려운 것이 이런 물건들이다.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물건들은 삶을 투명하게 만든다. 내가 어느 구석에 들어가 있어도 그것들은 나를 추적한다. 아니, 그것들이 나를 추적하기 전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표적을 내 스스로 남겨놓도록 유도한다. 내가 인터넷에서 서핑을 하며 아무리 먼 곳으로 돌아다녀도 접속하는 곳마다 내 아이피 주소가 남는다. 최근에는 내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입하여 어렵사리 치료를 끝냈는데, 프랑스의 어느 사이트에서 당신의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으니 주의하라는 메일이 배달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투명성에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사람살이란 묘한 것이어서 우리는 투명한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불투명한 것을 획책한다. 산중에 수도하러 간 사람은 자신을 물처럼 투명하게 만들려 하면서도 세상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되려 한다.

  대도시에 나와 간결하고 명료한 삶을 살려는 젊은이의 욕망에는 또한 자신을 군중 속에 감추려는 열망이 함께 따라붙는다. 인터넷은 인기들의 모든 삶을 한꺼번에 끌어안기 위해 그 그물을 더욱 넓히고 더욱 촘촘하게 짜겠지만, 사람들은 또 어디로 피해 달아나 은근한 사이트를 구성할 것이다. 그래서 그 그물이 더 커진다. 불투명한 것들이 투명한 것의 힘을 만든다. 인간의 미래는 여전히 저 불투명한 것들과 그것들이 근거지인 은밀한 시간에 달려 있다. (2001)

 

『밤이 선생이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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