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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학교 / 이윤기

어른의 학교 -이윤기 버려야 할 버릇이 어디 하나둘이겠습니까만, 나에게는 요즘 들어서 부쩍 고치려고 힘을 많이 기울이는 더러운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별로 존경하지 않으면서도,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은근히 깔보는 버릇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척하다가도 나이를 알게 되면 속으로, 응, 내가 입대하던 해에 너는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까고 오줌을 누고 다녔겠구나, 혹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태어난 것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느냐…… 이런 식입니다. 물론 욕먹을까봐 말은 그렇게 안하지요. 내가 가까이 사귀어 모시는 선배 가운데, 미국의 대학교 앞에다 조그만 식료품 가게를 연 분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그 선배는, 선비형에 가까운, 다소 완..

놀자, 책이랑 2010.08.29

울렁울렁

폭음을 했다. 몸이 약해진 건지 한 순간에 확, 가버렸다. 2차로 간 라이브 카페에서 그 옛날 노래를 들으며 그 시절로 돌아갔나 보다. Take me home country road , 님은 먼곳에... Cutty Sark 이라는 위스키가 너무 부드럽게 넘어갔다. 아니, 그 전에 소주를 한 병도 더 마신 듯 했지. 초저녁부터 작정하고 마신 술이 알딸딸 기분좋은 순간도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머리가 어질어질한 건 참을 수 있다. 그 좋은 술을 마시고 왜 게워내냐고 했던 게 언제였던가. 마구마구 토해내고. 속이 계속 울렁울렁, 종일 물만 마시다가 저녁엔 누룽지를 해서 먹었다. 속이 좀 진정되는 듯 해서 탄천을 나가니 비가 살살 온다. 상쾌하다. 어서 정신을 차려야지. 오늘 친구 만나기로 한 약속을 연기..

입추

입추 / 고정희 회임할 수 없는 것들이여 이 세상의 고통에 닿지 못하리니 열매 맺지 못하는 사과나무여 사랑의 도끼에 찍혀 불구덩이에 던져지리니 조상들의 예지를 절기를 보며 느낀다.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지나니 아침 저녁 바람의 맛이 다르다. 매미 소리의 기세도 조금은 꺾인 듯 하다. 가을, 열매를 준비하라고 채근한다. 도끼에 찍혀서 불구덩이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아, 이쁜 저 여인, 나도 공원에 책 들고 나가서 엎드려 봐야겠네. 넘이사 괴롭거나 말거나.

시 - 필사 2010.08.22

오빠, 미안해요

요양원에 있던 큰오빠가 떠났다. 이 더위 끝나면 한번 찾아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는데... 죽음에 이른 시간은 급박했다. 심장마비다. 마침 방학이라서 멀리 있던 손자, 손녀. 아들 셋, 모두 임종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 마음 편한대로 오빠가 고통없이 갔다고 안도하며 자주 못보던 친척들을 만나 한편으론 축제 같은 첫 날을 지냈다. 옛이야기 하면서 잠깐씩 웃기도 하면서. 어제, 입관 예절에 막내 중딩 손자까지 모두 참석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오빠들이 나를 입관에 참석시키지 않았다. 오빠들한테 나는 여전히 막내였기때문에 충격받을까봐 그랬단다. 나 역시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 것을 보면 그때까지도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나보다. 할아버지의 임종을 접하고, 입관까지 바..

준비하라

큰 이별을 앞두고 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듯 하다. 그의 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린다. 한번도 흐트러저 본 적 없는 생, 한번도 말랑말랑해 본 적 없는, 반듯하고 꼿꼿한, 한때는 그런 모습을 존경하고 좋아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정말 훨훨 벗고 자유롭게 살았다면 이렇게 가슴 쓰리지 않을 것을. 야망 / 성민호 사랑도 부질없어 미움도 부질없어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버려 성냄도 벗어 버려 하늘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 훨훨 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