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157

나를 밟아주세요 / 노정숙

http://koreayouth.or.kr/bbs/board.php?bo_table=a4&wr_id=54 대전청소년 대전청소년 koreayouth.or.kr 나를 밟아주세요 노정숙 허술하던 내 몸이 단단해졌다.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사람들 덕이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요즘 들어 왜 그리 나를 좋아하는지.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말에 만보기를 차고 발걸음 숫자를 세는 사람도 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상관없이 내게로 향하는 사람들 때문에 몸살이 날 지경이다.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지만 사람의 숨결을 가까이 느끼는 지금 행복하다. 내 오른쪽에는 청정하지는 않지만 물이 흐르고 왼쪽에는 잘 다듬어진 잔디와 벌개미취가 한창이다. 꽃도 없이 귀여운 애기땅빈대, 보일 듯 말 듯 수줍은 매듭풀이 잔잔한 ..

격리생활 / 노정숙

격리생활 노정숙 느닷없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되어 경기 제7생활소에 들어갔다. 목이 간질거려서 감기약 3일 처방을 받고, 첫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엑스레이를 찍는데 혼자다. 조용한 긴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적막 속에서 휴대폰으로 전하는 지시에 따른다. 이틀 지나니 이곳의 패턴이 다 외워졌다. 아침 7시경이면 방송이 시작된다. 아침식사를 배달할 것이니 복도에서 인기척이 나도 절대 현관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후 준비가 끝났으니 배달된 식사를 속히 방으로 가져가라고 알린다. 한 시간 쯤 지나면 소독을 할 것이니 시끄러워도 문을 절대 열면 안 된다는 방송이 이어진다. 내내 왕왕대는 방송, 인기척에 문을 열면 방역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아침 8시와 오후 5시,..

두 어머니 / 노정숙

두 어머니 노정숙 꿈결에도 안 오시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떠난 지 20년이 넘은 엄마는 내 꿈에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왜 엄마는 셋째 오빠와 조카며느리 꿈에 다녀가시면서 나만 외면하는 걸까. 어머니도 큰아들에게는 가끔 다녀가신다는데 내겐 안 오신다. 어머니는 나를 마지막까지 알아보셨는데…. 엄마에게도 어머니께도 할 일을 다 해서 아쉬운 게 없다고 여긴 게 괘씸하신 걸까. 한 시간 거리에 살면서도 엄마한테는 날짜를 정해놓고 한 달에 한 번 찾아뵈었다. 가끔 전화를 하면 ‘반보기’는 되었다며 고맙다고 했다. 84세 엄마는 기력은 쇠했으나 맑은 정신이었다. 그러다 하루도 앓지 않고 잠자듯 혼수상태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 새천년을 엄마 장례식장에서 보냈다. 변화무쌍..

선한 그들 / 노정숙

선한 그들 노정숙 바리톤 정경의 오페라마 「우리 가곡 전상서」를 보러갔다. 건물 입구에서 열 체크를 하고, 공연장 앞에서는 QR코드 확인을 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무대라서 설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넓은 공연장에 의자가 스물 남짓이다. 오페라와 드라마를 합성한 오페라마를 만든 정경 교수는 토, 객, 한, 맥, 연, 한국을 대표하는 다섯 개의 주제에 맞춰 한국가곡에 깃든 역사의식을 일깨우며 열창했다. 우리 경제를 일으킨 기성세대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했지만 역사적 배경까지 알리는 이런 노래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공연 끝부분에 관객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다. 한 관객이 성악과를 지망하는 고3에게 들려줄 말을 청했다. ‘예술가는 광대로서 남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를 주는 것이..

이런 모독 / 노정숙

이런 모독 노정숙 올해가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년이다. 그가 1996년에 티베트와 네팔을 다녀와서 쓴 책을 다시 읽었다. 첫 장에 ‘98.11.6 盧貞淑’이라고 쓰여 있다. 그때는 새 책을 사면 이런 표시를 했다. 지금은 가능하면 흔적 없이 본다. 밑줄 치고 싶은 부분엔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필사한다. 깨끗하게 보고 읽을 만한 사람에게 준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나는 티베트, 네팔을 가보지 못해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한참 후 딸의 결혼식 날짜를 받아놓고 딸과 함께 인도를 거쳐 네팔을 다녀왔다.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분명 이 여행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이것도 혼수라고 생색을 냈다. 인도를 거쳐서 당도한 네팔의 첫인상은 참으로 순박하다고 생각했는데, 박완서 선생이 티베..

<문학의오늘> 시 2편

지진 노정숙 밴프 국립공원에 사는 곰은 겨울잠을 자기 전에 나무 위에 올라 제 몸을 떨어뜨린다 쿵, 쿵, 쿵, 쿵 제 몸에 쌓인 지방층을 확인해야 겨울을 나는 회색곰 손자가 온 날 아래층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삽시에 지진의 근원지가 되었다 제 몸에 쌓인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루를 사는 아이들 우리집 위층에 사는 회색곰은 무얼 위해 제 몸을 떨어뜨리나 낮밤 없이 계절도 없이 지진이 나도록 쿵쿵쿵 가슴 노정숙 봉긋 솟아오른 봉오리 젖 대신 실리콘을 담고 있는 흔들리지 않는 어여쁜 용기 젖통을 과감히 포기해버린 저 황홀한 결단 걱정과 희망을 버무려 꾹꾹 눌러 담은 젖밖에 없어 젖을 다 내주고 늘어진 쭉정이 덴가슴으로 사는 이 황홀한 견딤 어쨌거나 모든 가슴은 위대하다 2021 여름호 통권39

그 후, 15년

그 후, 15년 노정숙 노인의 ‘어서 죽어야지’ 하는 말이 3대 거짓말 중에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쪽으로 더 기운다. 몸의 쇠락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 노인이라고 마냥 살고 싶겠는가. 아직은 몸보다 마음이 부대낄 때가 많다. 조심성 많아진 몸의 신호를 무지르며 여전히 꿈꾸는 가슴이 난감하다. 가끔 먹통이 되어버리는 관계에 기운이 빠진다. 그러면 나는 매일 먹어야 한다는 혈압약을 띄엄띄엄 먹다가 한참 먹지 않는다. 고혈압은 가족력이다. 아버지와 큰오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그래도 난 강단 있는 엄마 체질을 닮아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수년 전부터 처방을 받고 있다. 며칠 안 먹으면 얼굴이 붓는데, 더 오래 버티면 그런대로 몸이 적응을 하는지 아무 증상이 없다. 홀로..

어느 날 무심히 / 노정숙

어느 날 무심히 노정숙 화원에서 남천을 데려왔다. 대나무풍으로 미끈한 일곱 가닥 줄기에 적당히 뻗은 이파리가 날렵하다. 동양화를 보는 듯, 한가로워 자주 눈길을 주었는데, 우리집에 온 후로 새로 난 잎이 넙데데하게 자란다. 크지 않은 분재 화분에서 마디게 자라는 성질을 잊어버린 듯하다. 튼실하게 자란 새잎이 원래 있던 잎과 부조화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는다고 마구잡이로 자라도 자르거나 휠 줄 모르는 주인이란 걸 알았나 보다. 그 화분에는 빨간 버섯도 살다 가고, 화분 위로 살짝 나온 뿌리에 비로드 같은 이끼도 자란다. 어른 허리께 넘는 남천은 줄줄이 피는 하얀 꽃도 건너뛰고, 가을이 깊었는데도 단풍 들 기미도 없이 푸른 새순들만 올라온다. 움트는 연록 잎은 어린 새가 먹이를 향해 부리를 벌리는 모양..

시간의 힘 / 노정숙

시간의 힘 노정숙 시간의 바람 앞에 흔들리던 촛불이 꺼졌다. 아버님께서 요양원 생활이 1년도 안 되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 중환자실을 몇 번 드나들었지만 그때마다 바로 회복하셨고, 그날도 아침식사를 조금 하셨다는데… 불효막심이다. 80세 넘도록 오토바이를 타신 아버님은 모든 것을 말로 전하면 즉시 이루어졌다. 말년에는 청력이 떨어져 글로 전하기도 했지만, 어떤 일에도 당신이 우선인 모습으로 94년의 생을 마치셨다. 근엄했던 삶에 비해 죽음의 의식은 간결하고도 순조로웠다. 한줌 재가 되는 과정도 디지털 화면의 숫자가 조용히 알려줬다. 아버님을 모시고 간 첫 번째 병원 응급실에서 하시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사후에 대한 당부 말씀이었다. 얼른 휴대폰을 꺼내 녹음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띠, 띠, 띠’ 의료기구..

나를 받아주세요 / 노정숙

나를 받아주세요 노정숙 elisa8099@hanmail.net 나 삼문 벼랑에 섰습니다. 내가 먼 곳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 중에는 왜 하필 바쁜 시간에 부고訃告냐며 투덜대는 이도 있을 테고, 잠시 추억을 더듬으며 가슴이 저릴 사람도 어쩌다 있겠지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지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철든 후 내 생은 눈치보기의 연속이었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림없는 일이지요. 내가 떠나는 자리를 찾은 벗에게 두 번의 절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슬쩍 웃고 있을 내 영정사진을 보며 혀를 차는 대신 함께 씨익 웃어주길 바랍니다. 축제 같은 이별식이면 더 좋겠습니다. 잔잔하게 읊조리는 연도나 성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