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600

모든 나이는 눈부신 꽃이다 / 문정희

시인 문정희 씨의 세 번째 글 발레리가 괴테를 찬양하는 글에서 괴테가 천재가 될 수 있었던 여러 조건 가운데 으뜸으로 그의 장수를 꼽았던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괴테는 1세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살면서 그것도 인류의 정신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살면서 온갖 역사적 자양을 유유자적하게 종합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가 살았던 긴 생애 자체가 바로 그 내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술에서는 흔히 요절한 천재에 대한 동경이 많지만, 뜻밖에도 대문호나 거장을 보면 장수를 누리면서 그의 업적을 산맥처럼 쌓아 올린 사람이 참 많다. 장수는 생명이 누려야 할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축복임이 분명하다. 위대한 예술가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래오래 지상의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균수명..

놀자, 책이랑 2012.07.03

<불확실 시대의 문학>

* 며칠동안 이 책을 잡고 있었다. 딱딱한 장정에 묵직한 표지가 거부감을 준다. 요즘 말랑말랑한 것을 탐하다보니 영~ 부담스럽다. 역사를 바로 바라보는 것이 문학의 기본이자 바탕이 아닌가 생각하며 숙제처럼 읽어내려간다. 그런데 재미가 있다. 특유의 시니컬한 음성이 들리는듯, 책장이 쓱쓱 넘겨진다. 특히나 잿밥에 관심많은 나같은 독자는 '문단의 이면사'에 와서 불운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에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앞 선 시대 문인들 사생활과 스캔들이 흥미진진이다. 편지로만 소통했던 시절의 낭만이 있다. 편지가 사유물이 아닌 공유하는 지적재산으로의 가치를 발휘한다. 비평의 공방전을 벌이던 시대가 그립기도 하다. 비평을 하는 자세, 비평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생각해 본다. 앞으로도 며칠은 더 끼고 있어야 될것 ..

놀자, 책이랑 2012.05.18

고등 유민

정기구독 하면서 덤으로 온, 나스메 소세끼의 를 읽었다. 근대 일본의 소외된 지식인들이 나온다. 부자 부모를 만나서 고등 유민(소세끼가 만든 단어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얻지 않고 또 직업을 구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으며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 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언젠가 우리 아들이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공무원 안하고 딴따라가 되었을텐데..." 하던 생각이 난다. 그래, 부자 부모가 못 되어줘서 미안하다. -고등 유민, 부럽다. 주인공 게이타로의 방황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세상이 굴러가는 동안은 그 갈등도 함께 할 것이다. 작년 큐슈여행때 나스메 소세끼 생가에 간 생각이 떠올라 찾아봤다. 모형 앞에서. 줄을 당기면 저 고양이가 움직인다. 친필 원고 나쓰메 소세끼, 준수한 사색형이다. 피..

놀자, 책이랑 2011.12.23

문학의 오늘

*새로운 문학잡지가 나왔다. 문학 잡지가 이렇게 화려하면 미용실이나 병원에 비치해도 먹히지 않을까. 문학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가볍고 쉽게 전달하는 무엇인가를 궁리한 티가 난다. 대중화에 성공하길 빈다. 창비나 문지, 문학동네를 아우르는 내용에 여성동아, 씨네21 같은 눈요기와 재미까지 더해준다면. 저 아래 획기적인 창간사를 실현한다면, 성공하지 않을까. /창간사 방민호_ 읽는 기쁨이 있는 문학, 보는 기품이 남다른 문학의 잔치 /최초 공개 김수영 시인의 문제작 발견! -「그것을 위하여는」 유성호(해제)_'설움'을 어떻게 발산할 것인가 /현장에서 만난 작가 서울대에 간 시인 최영미 /포스트모던 문화 탐구-연재 운형_서교문화, 어디로 가고 있나 /너희가 이것을 아느냐 전우형_한국의 툴루즈 로트렉, 구본웅을 ..

놀자, 책이랑 2011.12.11

묵주알 / 나가이 다카시

묵주알 - 나가이 다카시 (永井隆, 1908 ~ 1951) 내가 결혼을 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삼년째 되는 해였다. 나는 당시 조수로서 월급이 사십 원이었다. 만주 사변 당시로 물가는 싼 편이었지만 사십원으로 살림을 꾸려나가기는 어려웠을 것 이다. 그러나 나는 아내로부터 불평을 들은 적이 없다. 새 옷 한 벌 사 주지도 않았다. 둘이서 요리 집으로 외식을 하러 간 일도 없다. 나는 매일 밤 늦게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고 아내는 살림에 전념하고 있었다. 월 사십원의 생활을 칠 년간 계속했다. 가족의 옷은 전부 아내의 수제품으로 양말에서부터 와이셔츠에 이르기까지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만든 것이었다. 프랑스제 입술연지도 이탈리제 향수도 손쉽게 살 수 있는 시절이었지만 아내는 화장도 하지 않았다. 거름통..

놀자, 책이랑 2011.02.28

어른의 학교 / 이윤기

어른의 학교 -이윤기 버려야 할 버릇이 어디 하나둘이겠습니까만, 나에게는 요즘 들어서 부쩍 고치려고 힘을 많이 기울이는 더러운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별로 존경하지 않으면서도,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은 은근히 깔보는 버릇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척하다가도 나이를 알게 되면 속으로, 응, 내가 입대하던 해에 너는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까고 오줌을 누고 다녔겠구나, 혹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태어난 것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느냐…… 이런 식입니다. 물론 욕먹을까봐 말은 그렇게 안하지요. 내가 가까이 사귀어 모시는 선배 가운데, 미국의 대학교 앞에다 조그만 식료품 가게를 연 분이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그 선배는, 선비형에 가까운, 다소 완..

놀자, 책이랑 2010.08.29

노자 도덕경

노자도덕경 2 세상 사람이 모두 아름다움(美)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데서 추함이라는 관념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참함을 착하다고 여기는 데서 착하지 못함이라는 관념이 나온다. 그러므로 유有와 무無는 서로 그 대립자로부터 생겨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채워 주며, 긺과 짧음은 서로를 분명히 해주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의논하며, 음音과 성聲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행동하지 않는데 의지하며 말없는 가르침을 계속한다. 만물이 그에 의하여 움직이는데도 그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사물을 기르면서도 그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지 않으며, 무엇인가 행동하면서도 그에 기대지 않고, 일을 해내더라도 그에 대해 경의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경의를 받..

놀자, 책이랑 2010.08.03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박경리

*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 '마지막 산문' 中에서 * 작가는 시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슬픔을 사랑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견디어야 합니다. * 스스로의 자유로운 정신에서 작가는 태어납니다. 재탕은 예술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정직하게 사물을 보세요. * 생각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또 배제합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자주 마주 앉아보세요. 모든 창작은 생각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고를 할 수 없는 시간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놀자, 책이랑 2010.08.02

고비에서 시베리아까지

'말馬은 말語과 닮았다. 인생은 수만 마리 말語과 함께 달려야 하듯이 말馬을 타고 달리는 일은 자신의 말語+ 語을 아주 아껴야 하는 것이다. 말語의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시작했던 사랑이 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내가 연필로 한 땀 한 땀 조각한, 내생의 지면에 씌어진, 시의 말굽에서 일어나던 먼 별의 먼지들.' - 중에서 김경주의 시집과 산문집을 같이 읽고 있다. 고비와 시베리아는 내가 좋아하는 지명이다. 비얀고비를 너무도 안일하게 가로질러 봤고, 시베리아는 근처만 맴돌다 왔다. 한겨울 시베리아, 그는 내가 가지 못한 곳을 갔다. 한겨울 띵띵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를 순록을 타고 내달렸다. 가장 부러운 풍경이다. 러시아는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나폴레옹을 쫓아 프랑스까지 진격한 젊은 청년 장교들은 서구의 ..

놀자, 책이랑 2010.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