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너의 이름은 / 박효진

칠부능선 2023. 2. 21. 23:07

박효진, 첫 수필집이 믿음직스럽다. 

수필의 기본을 안다고 할까. 멋내지 않는 문장들이 그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순박하고 진솔하다.

곁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 단숨에 읽힌다.

마냥 끄덕거리며 읽다가 등을 쓰다듬어 주고싶은 마음이 든다. 장해요, 잘 했어요. 이내 응원을 보낸다.

* 글도 나이를 먹고 유행을 탄다. 걸음마시절부터 써놓은 글을 언제까지 쌓아놓을 수만은 없어서 지금이라도 책을 엮어보기로 용기를 냈다. ...

내가 왜 글을 쓰는지 그 이유를 언제쯤 찾을 수 있으려나, 그 이유를 알 때까지 나는 평생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

* 가끔 감정이 흔들릴 때 토끼풀처럼 살고 싶었던 그때를 떠올리며 나 스스로 선택한 일에 끝까지 믿음을 가질 것이다. 힘든 일이 눈앞에 나타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참이다. 내가 결정한 일에 열정을 다하고 싶다. 가끔 후회로 아쉬움이 남겠지만 나의 길을 향해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22쪽)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니 지나온 결혼생활이 떠올랐다. 그동안 우리의 존재는 서로에게 무엇이었으며 우리의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가졌던 것일까. '둘만가족'이 되기로 마음먹은 뒤, 그는 그의 시간을 충실히 살았고 나는 나의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보냈다. 나쁘지 않았다. (115쪽)

* <무지개 그녀>

나는 울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걸 놓쳐버린 채 함께 끌어안고 울음을 쏟았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말만 했다. 나도 그녀의 현실이 억울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순 '뻥'이었다. 젊어서 뼈빠지게 고생하더니 나이 들어 뼈가 부서지는 병을 얻은 것이다. 의사의 말이 이 암은 수술도 할 수 없고, 완치될 수 없어서 평생을 조심히 살아야 한다고 했다.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항암주사도 꾸준히 맞아야 한단다.

그녀는 딸만 다섯인 우리 집 맏딸이다. (153쪽)

* 회덮밥 한 그릇과 맥주 한 병을 시켜놓고 벌써부터 취기에 젖는다. 마냥 행복하다. 처음 시도해본 혼밥이 최고의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비가 오는 날, 이제는 한잔 생각날 때 친구를 찾지 않는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용기와 그럴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가 생겼기 때문이다. (205쪽)

* <우리는 모른다>

"이 정도 먹어서 한 번에 가진 않겠재?"

엄마는 우리를 향해 작은 유리병을 흔들어 보인다. 수면제였다. 매번 이런 식이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저 침착하다. 엄마의 의도를 알면서도 걸핏하면 저러는 통에 이제는 지겹기까지 하다. ....

(2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