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시지프의 신화 / 알베르 카뮈

칠부능선 2023. 2. 21. 11:50

 

소설 <이방인>은 답답해하면서 단숨에 읽었는데, 에세이 <시지프 신화>는 만만치가 않다.

에세이는 자살에 관한 성찰로 시작하지만 마지막 행복한 시지프로 맺는다. 이 과정을 따라가기가 숨차다.

부조리를 넘은 것인지, 시지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연민을 뛰어넘어 희망을 품는 건 극적 긴장을 가져온다.

어려운데 재미가 있는 건, 그런 요소때문이다.

꼭꼭 씹어서 맛을 음미해야하는 에세이다. 카뮈의 다음 책을 또 찾게 만든다.

소설을 쓰기 전 기자였던 카뮈를 떠올린다.

 

 

 

*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으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15쪽)

 

 

* 나는 그 자아가 지닐 수 있는 모든 모습, 남들이 그것에 부여한 모든 모습, 즉 그 교육, 그 기원, 그 열정 혹은 그 모든 침묵, 그 위대함 혹은 그 저속함 등을 하나하나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함께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 것인 이 마음 자체조차 나에게 영원히 정의 될 수 없은 것으로 머물 것이다. 내가 나의 존재에 대하여 갖는 확신과 내가 그 확신에 부여하려는 내용 사이에 가로놓인 단절은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영원히 이방인일 것이다.

심리학에 있어서든 논리학에 있어서든 여러 가지 진리는 있으나 유일한 진리는 없다. "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는 고해성사 때 하는 "덕을 행하라"라는 말 정도의 가치밖에 없다.

(38쪽)

 

 

* 나는 여기서 실존적인 태도를 감히 철학적 자살이라 부르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한 사상이 그 자체를 부정하고 바로 자기 부정을 통해 스스로를 초월하려고 애쓰는 경향을 치칭하는 하나의 편리한 방법이다. 실존파의 사람들에게는 부정이 곧 그들의 신이다.

(67쪽)

 

 

* 돈 후안이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전전하는 것은 결코 애정의 결핍 때문이 아니다.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자로 그를 상상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그가 타고난 재주를 되풀이해 써먹으면서 그 깊이를 더해 갈 수밖에 없은 것은 모든 여자들 똑같은 열정으로, 그때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자들은 저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맛 보인 적이 없는 것을 주고 싶어 한다. ...

... "드디어라고? 천만에. 한 번 더지" 어째서 드물게 사랑해야 많이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109쪽)

 

 

* 신화란 상상력으로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으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에서는 다만 거대한 돌을 들어 산비탈로 굴려 올리기를 수백 번이나 되풀이하느라고 잔뜩 긴장해 있는 육체의 노력이 보일 분이다. 결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이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 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182쪽)

 

 

* 이제 나는 시지프를 산 아래에 남겨둔다! 우리는 항상 그의 짐의 무게를 다시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 올리는 고귀한 성실성을 가르친다. 그 역시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으로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이 돌의 입자 하나하나, 어둠 가득한 이 산의 광물적 광채 하나하나가 그것 자체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 보지 않으면 안 된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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