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독신어론(習讀新語論)
- 수필, 이어 온 것이 없다
채선후
오랜만에 같이 등단했던 문우와 연락이 닿았다. 등단 이후 작품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던 터라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웠다. 한때 열의를 가지고 글을 쓰던 모습이 참 예뻤던 문우였다. 어찌 된 일인지 등단 후 작품 발표가 없어 소식이 궁금했었다. 그녀 말은 합평을 받을수록 회의가 들고, 쓸수록 겁이 나서 펜을 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현재 수필 문단은 수필을 모른 채 흘러가고 있다. 수필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조차도 잘 모른다. 서양문학 어느 장르 언저리쯤 되는 이론으로 겉치장만 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 수필을 붓 가는 대로만 쓰면 되는 줄 안다. 어찌 되었든 수필 작품에는 작가 목소리가 진솔하게 담겨 가장 자기다운 글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수필가들은 자기애가 강해 남의 작품을 잘 읽지 않는 경향도 있다. 각기 다른 다양한 목소리들이 작품에 담기다 보니 작품에 대한 견해를 주고 싶어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각자의 삶에서 건져진 소재이고, 시선의 차이가 있어 뭐라 의견을 내기에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공통으로 겹쳐지는 부분은 문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합평할 때는 문맥이 문법에 맞네 틀리네, 오타네 아니네 이런 국어 수업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습독(習讀)하지 않은 데에서 온 것이다. 습독이란 무엇인가. 이규보가 이지(履之)에게 편지를 썼다. -이규보, 김주희 역(1978), 答全履之論文書, <동국이상국집 26권>,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한국고전번역원, 1990.-
편지 내용을 간추리자면 이지가 이백과 두보에 비유하여 이규보의 글이 문채가 빛나며, 문장의 이익과 병폐를 논한 것이 정간(精簡)하고 격절(激切)한 것을 칭찬하니 -履之足下。間闊未覿。方深渴仰。忽蒙辱損手敎累幅。奉翫在手。尙未釋去。不惟文彩之曄然。其論文利病。可謂精簡激切。直觸時病。扶文之將墮者已。- 이규보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시로 명성 있는 사람들 몇몇은 동파의 어구를 도용하고, 뜻을 낚아채어 스스로 잘난 체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옛사람의 것을 답습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잘난 체를 하여 이목(耳目)만을 놀라게 할 뿐’이라고 한다. -紛效東坡而未至者。已不足導也。雖詩鳴如某某輩數四君者。皆未免效東坡。非特盜其語。兼攘取其意。以自爲工。獨吾子不襲蹈古人。其造語皆出新意。足以驚人耳目 - 그러면서 옛 사람의 체를 본뜨려는 자는 습독(習讀)한 후에 본받아 따라가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표절(剽竊)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凡效古人之體者。必先習讀其詩。然後效而能至也。否則剽掠猶難。-
즉 글을 쓰는 자는 필히 옛 것을 정밀하고 깊게 읽어서 스스로 깨우쳐 익힌 후에 글을 써야 된다는 것이다. 충분한 습독은 수필가에게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한 거름과도 같다. 습독이 없다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람들의 이목만 끌다 말 뿐이다. 이규보도 한때 습독하지 않은 것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젊어서부터 철없이 방랑하며 글 읽음이 그다지 정밀하지 못하여, 비록 육경(六經)ㆍ자사(子史) 같은 글도 섭렵만 하였을 뿐 근원을 궁구하지 못하였는데, 더구나 제가(諸家)의 장구(章句)를 다룬 글이겠습니까. 이미 그 글에 익숙하지 못하면서 그 체(體)를 본뜨고 그 어구를 표절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부득이 새 조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즉 이규보 역시 새로운 글을 창작하기에 앞서 옛 체를 습독하는 것을 중요시 한 것이다. 예로 문은 마음의 모양이라 했다. 체는 모양을 담아두는 그릇과도 같은 것이다. 어떤 감정, 느낌이 어떤 체에 담아 두면 잘 전달되고 오래가는지 옛 문장가들은 습독하였고, 이를 적어 후세에 전했다. 중국은 위·진·남북조 문체를 양나라 유협이 <문심조룡>, 명나라 서사증은 <문체명변>에 엮어 놓았다. 두 권의 책은 학파가 있을 정도로 연구하고 있다. 즉 습독하여 다음으로 잘 이어가겠다는 중국의 의지다.
우리는 어떠한가. 신라 문창후 최치원은 변려체 최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고, 고려 이규보는 이문화국(以文華國)의 대표 주자로 그 이름을 떨쳤다. 최치원은 현존 최초의 개인 문집인 <계원필경>,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을 집필하여 남겼다. 하지만 우리는 부끄럽게도 최치원, 이규보의 문장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묻는다. 고려 문장의 꽃을 피운 이문화국의 최고 문집 <동국이상국집>을 우리는 얼마나 습독하고 있는가. <동국이상국집>에만 논(論), 설(說), 시(詩), 부(賦), 서(序), 기(記), 잠(箴), 명(銘), 잡저(雜著), 상량문(上梁文), 애사(哀詞), 비명(碑銘), 묘지(墓誌) 등 체(體)의 종류가 무려 25가지 있다. 이중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체가 몇인가. 뿐만 아니라 중국과 다른 문학 창작의 주요 이론이 담겨 있는데 수필가들은 이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수필이 저평가 되고 있는 것도 옛 체를 제대로 이어오지 못한 탓이다. 한국 수필은 에세이와는 다른 맛과 멋이 있으며, 여타 문학 장르와 다른 맛과 멋이 있다. 먼저 수필가들은 습독을 통해 이 맛을 보았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맛 바탕에 자기의 성정(性情)을 체로 담은 후 꾸며야 된다. 지금처럼 문법으로 문장만 다듬는다고 좋은 수필이 되는데 한계가 있다.
문(文)은 마음을 받으며 마음을 잇는 끈과 같다. 습독은 그 끈을 잡고 무구한 역사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문인들의 심채(心彩)로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최치원에서 이규보, 이제현을 거쳐 조선 문장의 초석이 된 권근에서 신흠, 최립, 장유, 이덕무, 연암, 면암 등 유려한 문장가들의 문체를 습독하여 문장을 얻는다면 이는 몇 년 묵혀 온 문장인가. 아무리 천 년 묵은 산삼 뿌리가 귀하다지만 그에 비할 수 있겠는가.
습독은 수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중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북공정’이라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중국 영토 내 역사는 중국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토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영토 내 고구려를 기록한 광개토대왕비가 중국 것이 되면 한자로 쓰인 고문서, 비석 등 한자 문화는 모두 중국 것이 되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가 두 번 없으리란 법 없다.
다시 옛 체를 찾아 이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비굴한 문화 식민지를 겪을 수도 있다. 창궐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던 고전문학이 한자로 쓰였다고 다 중국 것이 될 수 없다. 요즘 AI가 글을 쓰고, 자음 ‘ㅇ’ 한 글자로 대화하는 시대 고루하게 고전을 읽어야 되겠느냐 반문하겠지만 우리에겐 문을 전해 받은 자의 책무가 있다. 문장은 쉬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치원은 모래 속에서 금을 찾는 심경으로, 이규보는 알아주는 사람 없는 문인으로 붓을 든 죄를 스스로 물어가며 남긴 심채(心彩)의 끈을 모른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쯤에서 끊어진 것을 찾아 다시 이어 놓아야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 수필, 누군가는 더 새롭고 아름답게 엮어가지 않겠는가. 이것이 수필가에게 필요한 습독의 이유다.
채선후債先後(본명: 최종숙):
충북 음성에서 나서 여주 남한강변에서 자랐다. 동산불교대학·대학원 불교학과,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과, 국립목포대학원 국어국문학 공부하였다. 현재 시·서·화·창의 고장 진도(珍島)에서 살며, 진도 풍경을 따라 수필을 쓰고 있다.
2016년 전남 지역형 창작기금, 2020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2021년 진도군 문화진흥기금 선정.
저서: [십오 년 막걸리] [문답 대지도론] [머뭄이 없는 가르침] [마음 비행기], [기억의 틀] [Mind Glider], [Waiting For The First Snow], [진도, 바람소리, 씻김소리]( 21년10월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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