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성남시청에서 떠나는 버스를 탔다. 무박 2일.
서산 휴게소를 지나고 나니 짙은 안개때문에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늘 죽음은 우리 가까이에 잠복해 있다. 안전벨트를 그제서야 맨다.
휴게소를 두 번 들리고, 밤새 달려서 새벽 4시 16분에 팽목항에 도착했다. 아, 0416.
현장을 본다고 새로운 감흥이 더할 건 없다.
이미 많이 애통해 했고, 이제 묻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르는 시점이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동거차도에서 아직 시신 수습을 못한 9명 가족 중에
4명의 아버지가 텐트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가서 손 잡아 주진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봤다.
세월호에 대해서 서정적 시각 말고 논리와 이성을 가지고 바라보라는 노마드님 말이 떠올랐다.
글쓰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슬퍼한다고 누군가가 나무랐다는 말도.
그런데
글쓰는 사람들이 그리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게 논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은 돈도 명예도 보장되지 않은 글에 빠지지않는다.
오죽해야 김현 선생님조차 무용함의 유용함이라고 말했을까. 세상의 가치로 무용하기 때문에 필요한 거라는 말씀이다.
이번 행사를 준비한 '세월호 2주기 성남용인시민준비위원회'의 면면도 그렇다.
뜨거운 마음이 재산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다.
유가족들과 아픔을 같이 하는 것 말고 무엇이 있는가. 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해명해 낼 수 있는가.
그들과 함께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19박 20일을 걸었다는 청년은 지금도 가슴 쓰리게 이야기한다.
함께 아파해주는 것, 함께 슬퍼해주는 것,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것 외에 무엇을 하겠는가.
바람은 우렁우렁 성질을 부리고
노란 리본 사이에서 울리는 풍경소리가 가슴에 스민다.
33명이 바람속에서 304명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들은 이미 하늘나라로 이사해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 땅을 내려다 보며 애면글면하는 사람들을 측은하게 여기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람의 命은 태어나는 순간에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도 나를 편안하게 놓아두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나온 발상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살고 죽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天災와 人災마저도 어떤 뜻이 작용하는 것이라 여긴다.
무엇이건 내 의지로 이겨내고 결정한다던 생각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내가 善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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