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삽 / 정진규

칠부능선 2008. 7. 27. 10:12

 

 

 

                    

 

                                                                                                       - 정진규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즈음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

토록 입술에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

 

주 잘 드른 소리, 그러면서도 한두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 (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내가 나는 내 곶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

 

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 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시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련 / 안도현  (0) 2009.04.11
지평선 / 김혜순  (0) 2008.07.29
수선화, 그 환한 자리 / 고재종  (0) 2008.07.24
허물 / 이어령  (0) 2008.06.29
박영근 이후 / 안상학  (0) 200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