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박영근 이후 / 안상학

칠부능선 2008. 6. 29. 19:12

 

  박영근 이후

 

                                                  - 안상학

 

누구라도 이젠

밤늦게 전화해도 반갑게 받자고

차비 만 원 달래면 웃전까지 얹어 주자고

천 리고 만 리고 택시타고 달려오면

택시비에 술값까지 마련해서 버선발로 마중가자고

마음먹기도 전에 박찬 시인이 갔다.

그래, 이젠 정말 어느 누구라도

살아 있을 때 잘해 주자고

술 한 잔 더 하자 하면 흔쾌히

앞장서서 이차고 삼차고 가자고

전화오기 전에 먼저 전화하자고, 암, 그러자고

마음 단단히 먹기도 전에

조영관 시인이 갔다. 지기미,

이제부턴 진짜 누구라도

울고 짜고 보채도 같이 울어주자고

절대 욕하거나 등을 보이지 말자고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어디서든지 만나자고

부르면, 원하면, 그러하다면, 저러하다면

망설일 것 없이 하자는 대로 하자고, 마땅히 그러자고

마음 단단히 고쳐먹기도 전에 김지우도 소설처럼,

하나같이 한창 나이데 갔다.

살풀이라도 하자고, 캬, 이젠

진짜 좋은 말 서로 하고, 진짜 이쁜 마음 쓰며 살자고, 캬아

있을 때 잘해 주자고, 그래 그러자고, 고, 고, 하다가 끝내는

멀쩡한 이름들 앞에 故자만 더 늘겠다고

에이 씨펄, 다짐은 무슨 다짐,

그만 술자리를 파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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