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양귀비꽃

칠부능선 2008. 1. 13. 14:54

 

                                 양귀비꽃                


                                                                                                                             노정숙


  세기를 앞서 간 시인의 삶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초판 출판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도 보들레르의 시는 묵은내가 나지 않는다. 시대의 감수성과 문제의식은 시공을 넘어 현실의 고뇌와 존재 자체의 절망을 공감하게 한다.

 

  정확하고 분명한 문체, 리듬감을 살린 간결한 표현으로 천상계와 지상계의 상응을 노래하며, 인간과 자연이 교감하며 ‘상징의 숲’을 이룬다.

  보들레르는 낭만파, 고답파의 한계를 벗고, 명석한 분석력과 논리와 상상력으로 인간심리의 심층을 탐구하였다. 고도의 비평정신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관능을 시대의 감수성으로  펼친다.

  한편, 에드가 엘런 포의 지적세계에 감동하여 17년간 그의 작품 5권을 번역하여 소개했다.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음울한 분위기에 공감을 느낀 듯하다.

 

  보들레르의 아버지는 62세의 원로원사무국 고관이었고, 어머니는 후처로 28세였다. 이러한 부모의 연령 불균형이 이상신경의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6세 때 아버지가 죽고, 이듬해에 어머니는 육군 소령 자크 오피크와 재혼했다.

  성년이 되어 의붓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을 상속받아 베튐강변 생 루이섬에 거처를 두고 댄디즘의 이상을 추구하며 여배우 잔 뒤발과 마리 도브륀, 사바티에 부인을 사귀며 호화판 탐미생활에 빠지며 독창성을 발휘한 연애시를 썼다.

 

  방탕한 생활로 계부가 남긴 유산을 2년 만에 탕진하여 법정후견인이 딸린 금치산자로 전락하며 아편쟁이로 유곽을 전전했다. 시대와 불화하는 낙오자로서 그의 글 전편에 회환과 증오, 우울과 권태가 흐르고 때론 죄의식이 깔려있다.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을 그려보려 했지만 실패한다. 도취나 열애, 헛된 환락으로 치닫던 시간과 실망과 치욕 속에서의 삶은 그를 우수로 몰고 갔다.

 

  보를레르는 끝없는 자유의 갈망으로 노래하는 바다 - 정복당하지 않는 자연과 투쟁하는 인간, 조응하는 이런 현상들을 보며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애증의 관계로 본다.

  뱃사람들에게 농락당하는 거대한 알바트로스, 가장 크고 멀리 나는 새 알바트로스는 저주받은 시인 자신의 모습으로 그린다. 자학과 반항의 극점이다.

 

  ‘어리석음과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을 괴롭히며’로 시작하는 서시  <독자에게>는 위선적인 삶에 악마의 유혹에 전락하는 인간, 악에 있어서조차 대담하지 못한 인간의 나약함을 들춰내며, 갖가지 악덕 중 최고 악질인 권태를 끼고 사는 인간에 대한 회의와 냉담이 그려있다.

 그러나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 위선의 독자여, - 내 동류여, - 내 형제여!’ 우리 죄는 끈질기나 뉘우침은 느슨함에 대한, 통렬한 자기비판이 닮긴 탄식이 담겨있다.

고도의 해학이다. 

 

  "지금은 취할 시간이다! 당신이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시오. 쉬지 않고 취하시오. 술로, 시로, 또는 도덕으로, 당신의 취향에 따라." 취향에 따르라는 말은 얼마나 열려있는 말인가. 현실에 갇히지 않는 자유혼의 발언이다.

  불운한 시대에 불운하게 태어나서 불운하게 살다 간 시인이 어찌 취하지 않고 견디겠는가. 시간의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해야 한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해야만 했다.

  ‘위선의 독자여’라며 시대를 향한, 어리석은 대중을 향한 울분과 독설을 기꺼이 용인한다.

 

  악의 의식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영광이다. 그래서 인간은 비참함과 동시에 위대함을 노래한다. 악마의 옹호를 자처하는 반항적 외향의 보들레르. 그의 내면에는 선의와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24세의 신인으로 숙련된 솜씨와 대담함, 풍요함이 놀랍다'는 찬탄으로 시작한 미술평론을 보면 그는 이미 미학의 많은 요건들을 확고하게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서 나는 고야의 후기 작품인 ‘검은 그림’들이 떠오른다. 그 보다 조금 앞 시대를 살다 간 고야, 그가 언급했을지도 모르는 고야, 세 번씩이나 빈사의 중병에 빠졌다가 회생하여 더욱 농도 깊은 걸작을 남겼다.

 추악상과 청순함을 함께하며 삶과 죽음의 처절한 경험에서 나온, 심오한 고야의 예술관과 악에서 미를 추구하려는 보들레르의 이원론 - 극과 극을 표류하던 고독한 시인의 영혼이 겹쳐진다.

  계시와 은폐로 이어지는 여러 갈래의 의미를 찾다보면 최후의 이상적인 여행은 죽음이라는 대목에 이른다.

 

  조국도 황금도 증오하며, 불멸의 미와 ‘세상에서 제아무리 호화로운 도시도 가장 웅대한 풍경도 우연히 구름과 함께 만들어낸 신비로운 매력에는 비길 수 없는’ ‘찬란한 구름’을 사랑한다는 보들레르, 환상적이며 빛나는 형태로 다가온 구름이 술이나 아편처럼 뇌 속에 떠오른다는 것을 보면, 구름이 술이나 시보다 그를 더 취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악의 꽃’을 읽고 나서 왜 양귀비꽃이 떠오는 걸까. 해사한 그 빛깔이며 폼이 어찌나 매혹적인지 천연마약 성분이라는 것이 뇌쇄적 아름다움에 딱 어울린다. 유럽에 가면 공원이나 들판에서 무리지어 흐드러진 양귀비꽃을 자주 만난다. 적당량을 쓰면 약이 되지만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이 어찌 이것뿐이랴.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만난 보들레르, 그곳에서 그의 불운했던 이승의 삶을 거듭 확인했다. 계부 오피크가(家)의 가족묘지에 묻힌 그는 비석마저도 홀로 번듯하게 서지 못하고 생모와 계부 사이에 그의 이름이 옹색하게 끼어있었다.

계부의 장황한 경력 아래 단 두 줄 <샤를 보들레르 / 1867년 8월 31일 46세에 파리에서 사망>이라고만 새겨져있다. 그 서늘하고 씁쓸했던 감정이 오래 따라다녔다.

  실어증과 반신불수로 세상을 떠난 보들레르, 허한 말을 놓아버리고, 육신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만난 죽음은 차라리 황홀하지 않았을까.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불운했던 천상의 시인. 그의 비석 앞에 진홍색 양귀비꽃을 한 다발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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