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서관 /한정원 사라진 도서관 한정원 도서관 하나가 불탔다 목이 긴 여름밤이 장마 속에 잠겨 기억의 수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솓아져 나왔다 어머니가 관장인 도서관이 매운 연기를 뿜어냈다 책들을 베껴야 했다 한 문장 한 문장 꼬리까지 받침이 부러질 때까지 물고 늘어져야 했다 재가 된 구름이 .. 시 - 필사 2016.09.02
앵두 / 고영민 앵두 고영민 그녀가 스쿠터를 타고 왔네 빨간 화이바를 쓰고 왔네 그녀의 스쿠터 소리는 부릉부릉 조르는 것 같고, 투정을 부리는 것 같고 흙먼지를 일구는 저 길을 쌩, 하고 가로질러왔네 가랑이를 오므리고 발판에 단화를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기린의 귀.. 시 - 필사 2016.08.03
봄이여 잔인한 형벌이여 / 이재무 봄이여 잔인한 형벌이여 이재무 또, 아프게 봄은 오는구나 새벽 휘두르며 병든 몸에 불을 지르며 가까스로 다스려온 生 충동질하고 부채질하는구나 내 아직 몸 속의 너를 다 보내지 못했는데 이교도처럼 봄은 몰려와 사망을 재촉하는구나 가지마다 잎들은 돋아나 허공 속으로 입 내밀어 .. 시 - 필사 2016.03.15
당신에게 - 태백 / 박 준 당신에게 - 태백 박 준 그곳의 아이들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제 몸통보다 더 큰 울음을 낸다고 했습니다 사내들은 아침부터 취해 있고 평상과 학교와 공장과 광장에도 여름빛이 내려, 이어진 길마다 검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음 당신에게 적은 답서에는 갱도에서 죽은 광부들의 이야기.. 시 - 필사 2016.02.15
농담 / 이문재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정말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 시 - 필사 2016.02.15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류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류근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 나누나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 다 한 말들 그 아픈 사랑 지울 수 있을까 어느 하루 비라도 추억처럼 흩날리는 거리에서 .. 시 - 필사 2016.02.04
청춘/ 새뮤얼 울먼 청춘 새뮤얼 울먼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장미빛 뺨도, 빨간 입술도 아니며, 나긋나긋한 무릎도 아니다. 그것은 의지와 상상력이며 활력이 넘치는 감성이다. 그것은 삶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이다. 젊음은 용기가 비겁함을 누르는 것을 뜻하며, .. 시 - 필사 2016.01.31
단풍의 이유 / 이원규 단풍의 이유 이원규 이 가을에 한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쌍하다 단푼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 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 시 - 필사 201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