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채용 통보 / 반칠환 어떤 채용 통보 반칠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저를 채용하신다니 삽자루는커녕 수저 들 힘도 없는 저를, 셈도 흐리고, 자식도 몰라보는 저를, 빚쟁이인 저를 받아주신다니 출근복도 교통비도, 이발도 말고 면도도 말고 입던 옷 그대로 오시라니 삶이 곧 전과前過이므로 이력서 대신 검.. 시 - 필사 2018.04.18
고목 / 복효근 고목 복효근 오동은 고목이 되어갈수록 제 중심에 구멍을 기른다. 오동뿐이랴 느티나무가 그렇고 대나무가 그렇다 잘 마른 텅 빈 육신의 나무는 바람을 제 구멍에 연주한다. 어느 누구의 삶인들 아니랴. 수많은 구멍으로 빚어진 삶의 빈 고목에 어느 날 지나는 바람 한 줄기에서 거문고 .. 시 - 필사 2018.03.27
빅풋 / 석민재 빅풋 석민재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 시 - 필사 2018.01.06
시 / 김초혜 시 김초혜 수런수런 몸 부딛는 소리 한 획 속에 만 획 모시고 언제 내 집에 당도하실건가 그림자로만 어른거리지 말고 선심쓰시듯 내게 안겨 오시게 - <시와시학> 2016 겨울호 시 - 필사 2018.01.05
사이와 간격 / 오성일 사이와 간격 오성일 저녁이 오고 별들이 제자리를 찾아 떠오를 때 어떤 별자리의 꼬마별은 가령 제자리의 어린별 하나는 어제 떴던 그 자리에 표해두는 걸 깜빡 잊고 제자리를 못 찾아 허둥댈 때도 있다지 그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리를 맞추는 건 오래된 떡갈나무라지 가지 하나를 높.. 시 - 필사 2018.01.05
파주에게 /공광규 파주에게 공광규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임진강변 군대 간 아들 면회하고 오던 길이 생각나는군 논바닥에서 모이를 줍던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나를 비웃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가 버리던 그러더니 나를 놀리듯 철책선을 훌쩍 넘어오던 새떼들이 파주, 너를 생각하니까 새떼들은 파주.. 시 - 필사 2018.01.05
데미안을 위한 노래 / 강은소 데미안을 위한 노래 강은소 이방의 꼬리표를 단 새 떼들이 시린 바람에 떨며 파닥거리지만 펼 수 없는 날개들 깃털은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눈처럼 떨어진다 다리를 넘어 이태원에서 떠밀려온 오렌지족, 모던한 여피족을 위하여 흔들거리며 흐르는 '고이비토 사요나라 고이비토 사요.. 시 - 필사 2017.11.07
시인공장 공장장님께 / 유성애 시인공장 공장장님께 유성애 귀하의 공장은 이번 장마에도 무고한가요? 오늘은 모처럼 햇볕이 쨍하길래 동네 서점에 갔어요 근엄한 자태의 스테디셀러를 지나 조금은 거만해 보이는 베스트셀러를 기웃거리다가 세 번째 노벨상 후보에 올랐다는 노 시인과 마주쳤어요 신상에 열광하는 .. 시 - 필사 2017.11.04
내 워크맨 속 갠지스 / 김경주 내 워크맨 속 갠지스 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 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된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 시 - 필사 2017.11.04